데미안x알리샤 / 메이플스토리 / 소설, 상플
[데미알리+모전모법] 당신의 숲
XXXX년. 0월. 0일. 아침에 잠깐 빗방울이 떨어진 이후로 여태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바람이 부는 건 좋은데 점점 날씨가 안 좋아질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된다. 점점 목표지점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그러하겠지.
일기를 일주일 만에 쓰고 있다. 모험을 하며 늘 많은 일을 겪는 터이지만 이번 일주일은 정말 정신없는 하루들의 연속이었다. 물론 아직도 그 연속선 상에 놓여있지만... 원정에 참여하기 전 잠깐이나마 등을 붙이고 앉아서, 저번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찬찬히 일기장에 써놓은 글들을 읽어보았다. 다 읽고 일기장을 덮을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일기를 적고 덮으려고 한다. 앞으로 닥칠 일이 얼마나 큰일일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평상시처럼... 평상시처럼. 아주 잠깐만이라도.
+ + +
아직 쓰러지지 않은 채 견고히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세상의 절대 악, 검은 마법사를 향해 가던 길. 뜻을 같이하는, 스스로를 모험가라 칭하는 자들과 함께 모여 동료가 되어 악의 심장부를 향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모르겠다. 어찌된 영문인지 다 도착했다고 생각했을 때 등 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음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었고… 겨우 의식을 찾았을 땐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진 다음임을 깨달았으니까. 졸졸 냇물이 흐르는 소리와 재잘거리는 새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다가 주변을 살폈을 때, 그곳에 나뿐 아니라 다른 동료 B도 함께 숲속으로 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며 꼬마 시절부터 함께 동고동락했고, 지금은 비숍의 길을 걷는 B. 원래부터도 체력이 약해 늘 걱정을 하게 만들었는데…. 그런 약한 체력 때문인지 연보랏빛 머리카락과 함께 축 늘어져 있던 모습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숨이 붙어있는 걸 알아챘을 땐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의식을 찾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겨우 몸을 세운 B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바짝 앉아서 부축해주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조금씩 기운을 차린 B의 첫마디는 나를 챙기는 말이었다. H, 괜찮아? 괜찮은 거 맞지?
다른 곳으로 떨어진 동료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한참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지도를 펼쳐 우리가 가야할 길을 정했다. 흩어지거든 흩어진 그곳에서 다시 뭉치기로 했던 과거의 약속을 떠올리며, 그곳에서 재회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곳을 가기위해, 우린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며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나서야 우리가 지도에 없는 길을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온통 나무로 푸르른 숲을 지나는 와중이었지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B는 다친 것 때문인지 마력이 불안정해지는 거 같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잠깐 쉬려고 멈춰 섰는데, 멀지 않은 곳으로부터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다. 한참 마른 나뭇가지를 분지르는 소리와, 무언가가 함께 타닥타닥 타는 소리. 가까운 곳에 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과 함께 우린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걸었다.
통나무를 쌓아 만든 집은 이 산을 지키는 산장처럼 보였다. 꽤나 늠름해보였으니까. 점점 통나무집에 가까워지자 마른 풀들을 엮어 둘러친 허리 높이의 울타리 너머로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바닥에 흩어진 잔가지들을 집어 부스러뜨리곤 마당 공터에서 불을 피우는 남자의 모습이, 지금까지 우리가 찾아온 인기척의 주인임을 깨달았을 때-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던 게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남자가 긴 소매 셔츠와 긴 바지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혈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피부색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었는데, 이에 평범치 않을 존재일 거라는 생각에 칼자루를 바짝 쥘 수밖에 없었다. 목이 반 쯤 잠겨 말이 나오지 않는 B를 대신해 내가 먼저 말을 물었다. 길을 잃었는데 몸의 상태도 썩 좋지 않으니 실례가 되지 않으면 잠깐이나마 쉬었다 갈 수 있겠냐고.
우리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해 영 반갑지 않은 표정을 지어보이던 상대는 B와 나의 상태를 한 번 일별하고는 마당 구석에서 평상을 끌어와 일단 앉을 것을 권했다.
자칫하면 쓰러질 것 같은 B와 함께 겨우 평상에 앉고 나서야 평범치 않은 자의 집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숲을 깨달을 수 있었다. 통나무집 지붕 위 굴뚝에선 퐁퐁 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고, 그렇게 피어난 연기는 이내 잔잔한 바람을 타고 푸르고 길쭉한 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마치 자연에 폭 파묻힌 집에 온 것 같았다.
“지도에 없던 길을 걷고 걷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도를 열 수 없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겨우 목소리를 찾은 B가 말했다. B 또한 이곳이 신비한 듯 주변을 둘러보더니 엘리니아가 생각나는 숲이라는 말을 남겼다.
“메이플 월드에 이런 곳이 있을 거라곤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B의 말 뒤에 덧붙인 내 말에 평범치 않은 자가 나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도 이곳에 낯선 자가 올 줄은- 아니, 올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이 숲의 길을 아시나요?”
상대의 무례한 반말에도 B가 공손한 말투로 물었다. 그런 B의 말에 한참 대답을 않던 상대의 붉은 눈동자가 숲의 먼 곳을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모르지는 않아.”
드르륵 소리와 함께 통나무집의 작은 유리 창문이 열렸다. 곧 살짝 걷힌 커튼 사이로 하얀 손이 나타났다. 하얀 손 뒤로 푸른 눈동자가 모습을 보였다 사라졌는데, 그런 인기척을 귀신같이 알아챈 반말의 사내가 발걸음을 옮겨 차분히 창문 앞으로 멈춰 섰다. 사내가 푸른 눈동자의 소유자에게 무어라고 설명을 하자 푸른 눈동자의 소유자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는 듯 보였다. 곧 원래처럼 창문이 닫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문 반대쪽에 위치한 통나무집의 출입문이 열렸다. 그런 모습을 멀뚱히 보고만 있는 우리에게 사내가 짧게 한 마디 했다.
“밤이 되면 더 추워질 거야. 일단 몸이라도 들어가서 따뜻하게 쉬어. 둘 다 환자라며? 그러니까 나보단 부인 말을 듣는 게 낫겠지. 뭐해? 주저할 거 없어. 들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통나무집으로 들어가자 창문에서 설핏 보였던,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묘령의 여인이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우리를 뒤따라 문을 닫고 들어온 사내는 우리에게 안쪽으로 들어갈 것을 권하고는 벽난로 쪽으로 걸어갔다. 벽에 쌓아둔 장작더미를 불 속으로 갈라 넣은 후 마음에 차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 사내는 이내 문을 열고 문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외부인이 굉장히 오랜만이란 말과 함께 자신을 알리샤라고 소개했다.
“저는 H, 이 친구는 B입니다. 길을 잃었는데 몸도 성치 않아서 잠시 신세를 좀 지다가 길을 떠나려합니다. 괜찮을까요?”
알리샤는 길이야 언제든지 알려줄 테니 몸 회복에 집중하라는 고마운 말을 남겼다. 벽난로를 옆에 둔 낡은 쇼파에 앉은 후에야 우리는 집안에 다른 사람이 또 한 명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벽난로 앞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흔들의자 앞에, 작은 흔들침대가 넓은 잎을 덮개 삼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조심스레 상체를 일으켜 살핀 흔들침대 안엔 조막만한 주먹을 꽉 쥔 아기가 뒤척이고 있었다. 알리샤가 아기의 기색을 알아채곤 이내 아이를 품에 안아 올렸다. 금발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온 아기의 뒤통수는 영락없는 알리샤의 아기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곧 칭얼거림과 함께 눈을 뜬 아기의 눈동자만은 그녀의 눈동자와는 달라서, 꼭 아까 보았던 사내의 눈빛과 닮아있었다.
“마치 어떤 신비로운 힘에 의해 움직이는 숲 같아요. 바람의 방향도, 나무들의 흔들림도. 평범한 숲은 아닌 거 같거든요.”
알리샤가 내준 따뜻한 코코아를 홀짝 마시고 내려놓은 B가 중얼거렸다. 흔들의자를 아예 쇼파를 마주보게 돌려놓은 후 앉은 알리샤는 아기를 무릎에 앉힌 채로 가만가만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는데, 아기는 한참 알리샤의 노래를 듣는가 싶더니 곧 중심을 잡고 앉아선 나와 B를 깜빡깜빡 살폈다. B가 아기를 향해 웃으며 스태프를 흔들자 달려있던 보석들이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냈는데, 아기는 그 소리에 반응하듯 꺄르륵 웃고는 조막만한 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허공을 향해 주먹을 쥐었다 폈다도 잠시, 스태프가 손이 닿지 않자 이내 시무룩한 아치가 입에 걸린 아기가 뺑,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 아기를 살피던 알리샤가 놀라서 상체를 앞으로 굽히고, 멀뚱히 앉아있던 나와 B도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것도 잠시, 마당에서 간간히 들리던 소음이 뚝 그치더니 아까 나갔던 사내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나타났다. B가 미안하다며 아기를 어르는 와중에 알리샤가 아기를 안고 일어나 벽난로 쪽을 향해 걸어오는 사내에게 아이를 넘겼다. 사내가 아기를 품에 안은 채로 손으로 규칙적인 박자로 등을 쓰다듬어주자 한참 울던 아가가 곧 조용해졌다.
“네가 보고 싶다고 운 거 같아, 데미안. 네가 방 안에 없어서.”
그제서야 우리는 사내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은 채로, 알리샤가 앉은 옆 흔들의자에 앉은 데미안이 조용히 아이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첫 인상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포근한 미소가 걸린 데미안이 자장자장 아기를 재우고 있었다. 데미안 옆에 앉아 그런 모습을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던 알리샤가 아기의 손을 조물조물 만지더니 상체를 움직여 작은 손에 입을 맞추었다.
“우리는 만나야할 동료들이 있습니다.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서 발걸음을 옮겼는데, 이런 신비로운 숲에 갇힐 줄은 몰랐습니다. 숲 초입부터 지도는 열리지가 않았고 가지고 있던 나침판도 무용지물이더군요.”
“동료들이라…. 함께하는 분들이 더 있으신가보군요.”
“네. 꼭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우리 아기가 손님들을 보고 싶었구나. 바쁘신 모험가분들을 이렇게 초대하다니.”
아기를 재운 후 그대로 의자에 몸을 뉘인 채로 잠에 빠진 데미안을 뒤로하고, 나와 B에게서 받은 빈 머그컵을 한쪽으로 치워놓으며 알리샤가 B에게 물었다.
“B, 당신은 처음부터 절 알고 있었는데, 그저 말을 아끼고 있는 거죠?”
“….”
알리샤의 질문을 들은 B가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한참을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런 B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알리샤가 말을 이었다.
“놀랄 거 없어요. 어차피 서로 해칠 사이 아닌 거, 서로가 더 잘 알잖아요. 당신도 우리를 알고 나도 당신과 당신의 동료를 알고.”
“책에서만 보았던 사람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게 놀라워서요. 긴가민가해서 부러 말을 꺼내지 않았어요. 책에서 역사로만 내려오던 사람, 아니 ‘당신’을 이렇게 볼 수 있을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질 못했어요. 그 때의 당신은 초월자였고, 지금의 당신은… 잘 모르겠네요.”
“초, 뭐라고? 초월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반문에도 B는 자신의 할 말을 이어갔다.
“분명 이 숲을 움직이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거 같은데...”
B의 대답에 알리샤가 피식 웃었다.
“아니다. 아이가 숲의 주인인가요? 아이가 곧 숲이고, 숲이 곧 아기인 것 같은 걸요. 아기한테서는 힘이 느껴지지만 당신은 아직 모르겠어요. 난 당신이 남기고 간 스태프를 다루기도 했던 사람이고, 당신의 힘이 깃들었던 빅토리아 아일랜드에서 마력을 연마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내가 그 때 다루고 익혔던 당신의 힘 그대로가 지금 느껴지질 않는 걸요. 그래서 주저했어요.”
B가 어색한 미소로 문장을 끝냈다. 그런 B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알리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리샤의 끄덕임에 B가 짧게 덧붙였다
“문양도 본 적이 있어요.”
까무룩 잠이 든 데미안의 안대를 살짝 스태프로 가리킨 B가 말했다.
“저 사람이… 그 데미안이로군요.”
B의 말에 데미안을 향해 고개를 돌린 알리샤가 한참 데미안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일어나서는 작은 서랍을 열고 담요 여러 장을 꺼냈다. 알리샤는 각각 나와 B에게 담요를 전해주고, 깜빡 잠든 데미안과 품에 안긴 아기에게도 담요를 덮어주었다. 알리샤도 마지막 담요 하나를 펴 자신의 무릎을 덮고는 흔들거리는 의자에 몸을 맡겼다. 머지않아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만이 방 안에 가득했다.
“알리샤, 아기는 내가 볼 테니까 들어가서 자.”
언제 일어났는지 눈을 뜨자 알리샤 앞에 서있는 데미안이 보였다. 마침 나 또한 잠자리가 불편해서 뒤척이던 차에 깬 터였는데, 데미안은 깊은 잠에 빠진 아기를 흔들침대에 눕혀서 턱 끝까지 이불을 덮어준 후 나지막하게 알리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깊은 잠에 빠진 듯, 데미안의 음성에도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알리샤를 내려다보던 데미안이 상체를 숙여 살포시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곤 익숙한 모양새로 등과 다리를 두 팔로 감싸 안으며 그녀를 들어올렸다. 데미안이 알리샤를 안아 올리자 알리샤가 덮고 있던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려던 찰나, 내가 날렵하게 들이민 칼집이 담요를 허공에서 살려냈다. 잠시 실례하겠다는 말과 함께 알리샤를 품에 안은 데미안이 방 안으로 사라졌다. 칼집에 걸린 담요를 거두어 마저 B에게 덮어준 후, 나는 칼집을 품에 안고는 멀뚱히 벽난로를 바라보았다.
장작더미는 붉은 기운을 품은 채로 점차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방을 나온 데미안이 등 뒤로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로 문을 닫고 걸어 나왔다. 원래 앉아있던 흔들의자에 폭 파묻히듯 앉은 그는 아기가 덮고 있는 이불과 같은 별무늬의 천 조각과 바늘을 꺼내더니 벽난로의 빛에 의지해 무언가를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물어봐도 될까?”
B에게 내가 덮고 있던 담요를 같이 덮어주며 물었다. 어차피 돌아올 대답은 반말일 테니 반말로 물었다. 데미안은 대답 대신 나를 힐끔 보곤 다시 할 일에 집중했다.
“어떻게 네가 그리고 너의… 알리샤. 이렇게 있는 거지?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그냥 흘려듣고.”
“…죽었으니까.”
“….”
“아마 네 동료는 잘 알 테지. 진정한 마법사로 거듭나기 위해 죽음을 경험하고 스킬을 얻는다고 들었으니까. 둘 다 죽었었어. 나도, 알리샤도. 모든 걸 다 잃은 채로.”
사뭇 무거워진 분위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엄숙해질 수 밖에 없었다.
“죽음으로써 다시 산 거야. 알리샤가 죽고, 내가 살고. 내가… 죄를 지었는데, 나만 산 거야. 그것 때문에 알리샤를 찾아 헤맸어. 겨우 찾아서 이렇게 다시 만났어. 이거면, 답이 되겠어?”
애초에 답을 듣지 못할 각오로 물었던 것인데, 차분하게 대답을 한 데미안의 말 끝에 나는 조용히 고개만을 끄덕였다.
어두웠던 밤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통나무집 사이사이로 스며들자, B 또한 기운을 차리고 일어났다. 이제는 가야겠다는 우리에게 데미안은 자신이 직접 길을 안내하겠다며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갈 채비를 하느라 시끄러워진 주위에 깬 아기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데미안에게 꼭 붙어있었고, 알리샤 또한 우릴 배웅하겠다고 방 밖을 나와서 아기에게 아침인사를 하고 있었다. 데미안은 아기를 자신의 눈높이까지 들어 올린 후 코와 코를 맞대며 보드라운 얼굴에 잠깐 자신의 얼굴을 부빈 후, 입을 맞추고는 알리샤에게 아기를 넘겨주었다. 알리샤는 여기서 인사해야겠다며 아기와 함께 손을 흔들었고, 나와 B 또한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무리 보아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이곳저곳이 다 똑같아 보이는 숲길이었지만, 데미안은 익숙한 듯 세 걸음 가량을 앞서 걷고 있었다. 나와 B는 데미안이 가는 걸음을 잠자코 따라가고 있었다. 숲의 끝자락에 다다른 듯 차분히 멈춰선 데미안이 B와 나를 향해 축언했다.
“너희 둘의 앞길을 축복할게. 내 부인…, 아니 알리샤 대신 축복을 전해줄게. 원하는 뜻, 부디 이루길.”
데미안이 짧게 목례했다. 나와 B도 고맙다며 인사를 남겼다.
한참 걷다가 뒤를 돌아봤을 땐 숲이 스스로 멀어지며 그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마치 꿈에서 빠져나온 것 같다고, B가 말했다. 몇 걸음을 더 옮긴 후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곳에 숲은 더 이상 없었다.
+ + +
당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이번 원정의 끝까지. 부디 모두가 무탈하게 다치지 말고 살아서. 살아서 보자 모두들. 머지않아서 이 다음 페이지에 내 손으로 글자들을 적어 내려갈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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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알+모전모법 내가 조아하는 커플이다. 그래서 썼다. 난 보고 싶은 걸 쓸 뿐이니까 하하하 뎀알 2세썰 각종 신혼썰 내 머리 속에 전세 낸지 오억년 전이다. 내 뇌 햄볶해버림. _처음 틀 짜고 남긴 메모
걍 둘은 살아있다.. 이걸 말하고 싶었나봄.. 기일 스터디 뭐 더 있겠습니까.. 어딘가에선 행복하게 살아주길 바랄 수밖에요 (오열함) _최종 마감하며 남긴 메모
저번에 썰 푼 것 중에 메이플 퀘 완료함 보면 모험가가 일기쓰는 것 같다는 말을 했었는데 거기서 착안한 글임.
오랜만에 마감하며 느낀 것.. 1. 한 번 일 펼친 건 미리미리 완성하자... 2. 뎀알 내가 너무 사랑해........
실은 마감을 안 한 건 아닌데 여태 작업한 게 다 앤솔 작업 뿐이었고... 뭐 그거 고려하더라도 요즘 시간이 너무 없어서 연성을 많이 못 함....
16.2.25. 꽃밭에서 잠든 소년과 소녀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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