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London 후기~

메이플스토리 데미알리

르비앙


 실은 아직 후기를 어떻게 쓸지 고민 중이에요. 작가 분께 직접 전달하는 편지처럼 써내려갈 것인지, 블로그에 올려서 모든 분들과 함께 소감을 나누고 싶은 것을 어필할 것인지. 그런데 쓰다 보니 지금 어투가 좀 더 편하게 나와서, 아마도 후자를 택할 듯싶습니다.

 인런던 후기 분명 써놓은 거 같은데 다시 찾아보니 없더라구요..... ~르비앙 머릿속의 지우개~ 덕분에 한 번 더 오래도록 잡고 읽었답니다. 우선 밝히자면 저는 맨 앞 장에 나오는 관련도서들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데미안과 알리샤는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그래서 메이플에서 처음 만나게 된 게임 내 캐릭터 그 자체죠. 그래도 캐릭터를 작업하면서 제작진들도 분명히 관련된 책으로 부터 캐릭터를 끌어왔을 거라고는 대략 짐작하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했죠. 만약 내가, 언급된 데미안이라는 책과 엘리스와 관련된 책을 읽고 다시 인런던을 읽는다면- 그때는 나에게 어떤 이야기로 또 다가올지 궁금하다고.

 아마도 바텐더 데미안은 저번에 트위터에서 썰을 풀면서 처음 만났던 걸로 기억해요. 저는 짤막한 토막글을 쓰다 말았구요. 하지만 작가님은 이렇게 아름다운 표지와 글들을 담은 중철본으로 책을 내주시기까지 했답니다. 그래서 꼭 후기는 쓰자, 써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쓰게 되었네요. 피치 크러쉬, 화이트 러시안, 어스퀘이크. 소제목의 배열대로 도수가 높아지는 것처럼, 감정도 강렬해지고 이야기도 사람을 잡아끌고 있어요. 그래서 써야만 했답니다. 이렇게라도 써내려가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을 거 같아서.

한 편의 연극을 보았어요. 1열에 앉아 무대를 보는 것처럼- 글을 읽어내려갔죠. 아마도 그건 작가님 특유의 표현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후기에 연극이 되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언급하셨죠. 저에겐 이미 한 편의 완벽한 연극이었답니다. 개인적으로 소설과 영화, 혹은 드라마나 연극을 보고난 후에 결말을 보고 감정을 다스려야할 때, 다스리는 정도는 결말이 주는 충격에 정도나 감동의 깊이에 비례하지 않아요. 물론 영향은 있겠죠. 하지만- 글로 만나는 것이냐, 영상으로 만나는 것이냐, 실물을 보는 것이냐에 따라 비례한다고 보는 편이거든요. 몇 십 권의 책 보단 몇 편의 드라마가. 몇 편의 드라마보단 한 편의 연극이. 직접, 현장감을 많이 체감할 수 있을수록 하나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감정을 다스리고 곱씹을 때 더 많은 '나'의 소모를 겪어요. 그래서 이 글은 연극을 보는 것 같았어요. 이미 소설이 줄 수 있는 감정의 역치를 훌쩍 넘어버려서- 마지막 장에서의 만나는 세계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대사에선, 한참을 책장을 덮지 못 하고 남아있었어야 했으니까. 마치 내가 의자에 앉아있던 시간 모두가 어느 작은 극장에서부터 비롯된 것 같이 생생했기에.

블랙 네일부터 타투까지. 이보다 더 완벽한 '바텐더 데미안'이 존재할 수 있을 런지요. 베이직 트렌치 코트와 올리브색 스커트가 잘 어울려서 누군가의 세상의 빛이 되어줄 수 있는 알리샤란 존재가 이렇게 메이플 외의 세계에서도 어울릴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둘을 끊임없이 더 아름답게 작가님의 글이 뒷받침해주고 있었어요. 작가님 특유의 강렬한 표현이 돋보였죠. 햇살이 창문을 깨뜨리고 들어온다던가, 유리조각이 밟혀오는 느낌이라던가. 잠시 문장을 멈추고 눈을 감은 채로 감각을 새겨볼만한 순간들이 온 문단에 포진해있었죠. 그리고 곳곳에 새겨진 메이플 월드에서의 데미안과 알리샤와 교차되며 수많은 먹먹함을 남기네요. 데미안과 알리샤의 손길을 처음으로 마주할 때의 나오는 5개의 명사형의 배치가, 마지막에도 등장해서 꽤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답니다.

 존재가 가진 이름에 대해서. 이렇게 유려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트고 전달해주는 글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존재의 본질. 존재 그 자체를 어색함 없이 풀어나가는 대사 하나하나가 참 좋았어요. 그리고 둘이서 존댓말하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존댓말 쓰는 커플들 보면 죽고 못 사니까요......... 둘이 존댓말 주고받는 것도 너무 잘 어울려요.

아마도 그들은 잘 어울려서, 그래서 잘 살 거라고. 내가 제일 사랑해 마다않는 커플이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멋진 글 속에서 다시 살아 숨 쉬니까 영원할 거라고. 그래서 이 글은 분명, 상상 좋은 울림이라고. 제일 애정하는 소설이 되어버린 인런던에 이렇게 아무 말 대잔치가 난무하는 글을 후기랍시고 묻혀도 될지 매우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들 읽어보시지 않으실래요.

저랑 같은 최애커플을 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멋진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인런던 n차 복습을 함께한 팬돌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