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x아리아 / 메이플스토리 / 소설, 상플

[팬텀아리] 별에 남다.



"당신은 참 재미있는 걸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군요. 하늘에 띄우는 비행정부터, 여러 모습의 카드까지. 이건 또 어디서 나신 건가요?"


팬텀이 자신의 몸집만한 부피의 물건 하나를 아리아 앞에 내려놓았다. 끝자락이 자잘한 금장이 되어있는 은빛 천으로 덮여있는 그 물건은, 단지 여러 둥근 원통 기둥들의 일부 외곽선만이 천에 드러나 있을 뿐이었는데, 팬텀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리아를 바라보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크리스탈 가든에서 보는 별도 아름답지만, 이렇게 에레브에서 본다면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서 가져와봤어."

"별이요? 망원경 같은 건가요?"

"시시한 망원경은 취급하지 않아."


팬텀이 은빛 천을 걷어내자, 광택이 흐르는 금속 원통 기둥에 달빛이 반사되어 미끄러져내리는 커다란 금빛 망원경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리아가 와, 하는 탄성을 내지르자 팬텀은 도로 그 장비에 천을 덮어 씌우더니, 어깨에 둘러매곤 아리아의 손을 잡았다.


"내가 에레브에서 제일 별 보기 좋은 곳을 봐뒀는데, 같이 가주지 않겠어?"

"에레브에 더 오래 있었을 저보다 별 보기 좋은 곳을 아신다구요?"

"당신과 함께 보고 싶은 별이 있어."





서로 두 손을 맞잡고 산책을 나선 양 둘은 걸음을 옮겼다. 옮기는 걸음마다 끊일 줄 모르는 둘 사이의 웃음 어린 대화는 계속되었다. 아리아의 지루할만큼 평범한 일상 이야기도 팬텀에게 전할 때 만큼은 신나는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귀 기울여 잘 들어줄 뿐만 아니라 반응 또한 뛰어난 팬텀은 작게 토로해보는 불편함이나 아쉬움따위를 도리어 잊게 해 줄만큼, 재미났던 일들을 더욱 좋았던 기억으로 만들어 줄 만큼 아리아에게 좋은 대화 상대였다.

한참 말을 하던 아리아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이면 팬텀은 아리아가 듣고 싶어할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이 크리스탈 가든에서 내려다본 -에레브에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또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든지, 이곳저곳을 다닌 경험담이라든지.. 아리아는 그런 자유분방한 팬텀이 겪었던 세상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팬텀은 그럴 때마다 볼 수 있는 아리아의 웃는 얼굴을 좋아했다.


아리아가 자주 즐겨찾는 정원에서 꽤 키가 있는 나무 뒤에 가려 후미진 뒤뜰로 들어온 팬텀이 걸음을 멈췄다. 아리아를 모시는 시종들도 쉬이 걸음을 하지 않는 후미진 곳까지 온 이유를 묻자, 팬텀이 대답했다.


"내가 오늘 초대한 사람은 당신 뿐이니까."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 시끄러울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방해당하고 싶지 않은 팬텀의 의중을 알아챈 아리아가 영광이군요, 라는 말과 함께 빙긋이 웃어보였다.



팬텀이 망원경을 내려놓더니, 은빛 천을 거둬내곤 허공에 한 번 크게 털썩 흔들었다. 붕 떴던 천이 차분하게 바닥으로 내려앉으며 간이 돗자리가 되었고, 팬텀은 그 곳에 아리아가 앉을 것을 권했다.


"흙 묻을텐데 괜찮겠어요?"

티끌 하나없이 깨끗했던 천을 바닥에 깔아버린 팬텀에게 아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귀한 망원경을 감싸던 천이니 그 또한 귀하게 다뤘을 천이었다.


"당신 옷에 흙이 묻는 건, 나에게 더욱 안될 일인데."


그래도 아리아가 그 천 위에 앉는 것을 주저하는 듯 보이자, 팬텀은 보란 듯이 망토를 뒤로 걷어내며 천 위에 털썩, 앉아선 망원경의 이것저것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아리아는 그런 팬텀의 모습을 보며 작은 웃음을 내뱉곤 팬텀 옆에 차근히 무릎을 접고 앉았다.




하늘과 가까운 에레브에서의 밤이란, 수없이 박혀있는 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올리곤 별이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때도 있었다. 물론 오늘 별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팬텀을 만난 후로부터는, 아리아에겐 밤 사이 멍하니 별을 보던 시간이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는데, 이에 쏟아질 듯 별이 펼쳐져있는 하늘을 주의깊게 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리며 나사를 조율하던 팬텀이 됐다, 를 외치며 아리아에게 더욱 가까이 와서 볼 것을 권했다. 아리아가 기대 어린 눈빛으로 바짝 다가 앉아선 눈을 망원경 가까이에 댔다.


"크리스탈 가든에서만 혼자 봤는데, 이렇게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늘 암흑 속에 모래알같이 무수히 흩어져있던 별빛만 보던 아리아의 시선에, 좀 더 큼지막하고 화려한 별빛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봐왔던 별들보다 더 찬란히 빛나는 듯 보였다.


"보여? 그 별들 사이에서 제일 빛나는 별이?"

"음... 아, 보여요!"

"그냥 생눈으로만 보면 다른 별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 별이지만, 이렇게 보면 너무나도 아름답게 빛나는 별을.. 당신이 보면 좋아할 것 같았어."

"당신은 제게 늘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군요."


망원경에서 눈을 땐 아리아가 팬텀에게 웃어보였다.

꿈을 꾼다면, 이것을 꿈이라고 할 것 같았다. 꿈 같은 순간. 사랑하는 이의 곁에서,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며, 연인의 선물에 행복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꿈.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 아래서, 오롯이 둘만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꿈.


그리고- 그 꿈을 확인하는 두 연인의 깊은 입맞춤.

풀벌레 소리가 잔잔히 공간을 채울 때, 그 위로 겹쳐 흐르는 입술과 입술이 마주닿아 내는 진한 입맞춤 소리.

둘의 마주닿음은 조용한 미소에 끝맺혔다.











팬텀은 자신이 걸치고 있던 망토의 목 부분을 느슨하게 풀고는, 망토 안으로 아리아를 당겨앉아 함께 덮었다. 


"이 모습을 담은 빛이 긴 시간을 지나와서.. 우리는 과거를 보고 있는거야. 이 별의 수백 년 전 모습을.."

"그렇게 생각하니까 기분이 이상하네요. 과거의 시간을 이렇게 지금 본다는 것이."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팬텀을 보며 아리아는 말을 이었다.


"지금 그 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글쎄. 뭐, 어쩌면 지금 사라지고 없을 수도 있겠지." 

"저는 그 별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건 나도 그래."

"당신과 내가 함께 이렇게 함께 있는 이 순간을.. 그 별도 기억해 줄 것 같아서요."

"이런, 우리 둘 사이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 아니 별이 또 하나 생기는 건가?"

"그런 셈인가요?" 

후후훗, 웃던 아리아가 웃어보였다.


"우리가 없어도.. 그 별엔 우리가 함께한 순간이 살아있을 것 같거든요." 

아리아가 별 감상문을 읊조리다 팬텀에게 고개를 편히 기대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군단장들과의 회담이.. 좋게 끝날 수 있겠죠?"











과거의 시간을 함께 나눠보고..

현재의 시간에 함께 머물렀고..

먼 미래의 언젠가 함께 할 우리는...

삼생을 함께할 인연이군. 아리아...






"당신과 함께 했던 순간이 수백 년전의 이야기라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군. 어제같이.. 너무나도 선명한데."

어쩌면 둘이 함께 했을 그 자리에, 너무도 오랜 세월이 지나 과거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그 곳에, 팬텀은 은빛 천을 뒤집어쓴 망원경을 내려놓고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모시는 황제가 다른 곳. 세월이 흘러 변한 곳. 당신이 이젠 없는 곳. 그 곳에 팬텀은 홀로 서 있었다.


전처럼 천을 바닥에 깔고, 차근히 앉은 팬텀이 망원경을 움직였다. 하늘을 마주한 망원경 렌즈가 곧 한 곳에 멈춰섰다.


"당신과 나의 별이.. 이렇게 남아있네."

렌즈에 담기는 모습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수백 년 전.. 우리를 마주하고 있었을 그 때의 모습이 이렇게 보이는 건가."

별로부터 이 곳까지의 빛이 흘러온 거리, 수백 년.. 당신과 함께했던 그 시간으로부터의 거리, 수백 년... 둘의 시간이 얼추 비슷해보였다.



별은 여전히도 빛나고 있었다.

팬텀은 품에서 꺼낸 스카이아를 한 손 깊이 쥐어보더니 짧게 입맞췄다. 그 손길에 눈물 한 줄기가 볼을 타고 흘렀다.


스카이아에 하얗게 숨자국이 내려앉았다. 그런 스카이아를 입술에서 뗀 팬텀이 작게 속삭였다.


"당신처럼.. 당신과의 추억처럼 이렇게 남아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군."




팬텀이 자신이 피워낸 장미를, 아리아가 앉아있었을 자리에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별에 남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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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팬텀이 보고싶었던 것으로...








...빛은 일정한 속도로 진행하기 때문에 우주에서 먼 거리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과거를 보는 것이 된다... - 융합과학 중 지구과학 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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