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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베타] 망각의 길 끝에서



 “채널 돌까? 아니면 좀 더 있을래.”

 붉은 기운을 일렁이며 돌아다니는 망각의 수호대장들을 바라보며 알파가 물었다. 한참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는 베타의 표정을 살피며 알파가 물었다.

 “내기 할까? 5분 안에 나올지 안 나올지.”

 “내가 당연히 이길 텐데?”

 그런데도 하겠다고? 베타의 물음 뒤로 채 나오지 않은 문장까지도 알파는 읽어냈다. 표정 변화가 뚜렷하지 않은 베타였지만 '내기'를 두고 벌어지는 대화니 알파는 베타가 말하지 않은 뒤의 말까지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아니. 이번엔 내가 이길 것 같아. 나는 5분 안에 나온다에 오늘 해야 할 채집 공부를 걸겠어. 만약 내가 이기면 베타 네가 오늘 내가 해야 할 공부까지 다 해주면 되는 거야.”

 “…좋아. 나는 아닐 거 같아. 나는 연금술 공부를 걸게.”

 베타의 대답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알파가 전투분석을 켠 채로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1초, 2초…. 시간이 흐르는 걸 확인하면서 알파가 의자를 펴고 앉았다. 베타도 알파 옆에 의자를 펴곤 함께 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전관리인을 믿을 수가 없단 말이지. 우리한테 환영한다면서 일반 방문객은 일절 받지 않는다고 했어. 어떻게 우리한테 일반 방문객이라고 할 수 있냐 이 말이야. 요한나가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더더욱 믿을 수가 없어. 거울세계에서 봤잖아. 완전 사기꾼 노릇하면서 우리한테 약을 팔아먹던 신관이라고.”

 “…거울세계에선 우리가 신전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고 그랬어. 뒤를 이어 초월자가 되어야했는데 왜 왔냐고. 근데 여기선….”

 “ 시간은 과거를 향해 흐릅니다. 나아가고 싶다면 여신께 허락을 받아야만 합니다. 대리자인 저라면 대신 허가를 내드릴 수도 있지요. 당연히 나도 알지. 능력이 따르지 못하면 허가는 쓸모없다는 거.”

 “…우리를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그랬잖아.”

 “그래, 충분히 시험해보고 싶을 수 있어. 근데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시간의 초월자 자체를 아예 못 알아볼 정도로 돌팔이 신관 같아. 아니면 상대를 엄청 고생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악의가 가득한 신관이라던가. 내가 아까 만난 모험가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넘어가는 현재의 문 너머로도 신관들이 조사를 하러 나가있다는 이야기에 막 화를 내더라고. 매일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는 보답으로 엄청 조그마한 보상을 준대. 코인을 아무리 열심히 모아도 말도 안 되는 양의 돌들을 가지고 가야지만 무기로 바꿔준다고 그랬어. 그런 신관들을 총괄하는 사람이 신전관리인이잖아. 이상하지 않아? 그렇지?”

 “꼭 그런 거야…?”

 “그런 거지. 오늘 돌아가서 여신님께 말씀드려보자. 이렇게 개고생을 시키는 신관들, 분명 문제 있어 보여. 봐봐. 신전을 지키다가 여신께서 봉인 당해서 이성을 잃어서 신관이고 수호대장이고 몬스터가 된 거라고 쳐. 이들의 목숨을 거둬야하는 것도 응당 우리의 역할이라고 치자고. 근데 봐봐. 대체 몇 마리냐고. 최소 3998마리를 잡았어야했어. 우리가 해야 하는 일도 맞지만, 몬스터가 되지 않은 신관들이 관리해야하는 부분이기도 하잖아.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우리에게 미룬 거라고.”

 알파가 말을 하면서 번뜩 열이 뻗친 모양인지 의자를 뒤로하고 벌떡 일어났다. 이윽고 가볍게 날아올라 허공에 검을 휘둘러본 알파가 전투분석에서 흐르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5분이 다 되어 가는데….

 “알파, 그거 알아?”

 “뭐?”

 “알파랑 나…. 어드밴스드 스킬 배운 이후로 스킬 색 보라색으로 똑같아진 거.”

 “그런가?”

 태도를 내지를 때마다 나오는 기운이 파란 기운이었다면, 대검을 묵직하게 내리칠 때마다 나오는 기운은 붉은 기운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분명 그랬는데. 그 이후론 앞에 있는 걸 해치우기 바빠서 생각도 못해본 부분이었는데.

 “레벨 150 즈음부터. 둘 다 검에서 보랏빛 기운이 나오는 스킬을 쓰고 있었잖아.”

 그랬나? 태도를 들어 올려 보인 알파가 칼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것도 같고.

 “신기했어. 뭔가 둘이 닮아가는 기분이라서.”

 “신기할 게 뭐 있어. 내가 너고 네가 난데. 닮은 게 아니라 똑같잖아.”

 “전투 스타일은 아예 달랐잖아. 알파가 가볍게 날아다닐 때 난 무겁게 찍어 누르고. 파란 기운이랑 붉은 기운이랑, 라피스랑 라즐리랑 닮은 부분이 생길 수 있을 거라고 알파는 예상했었어?”

 “그야, 나는…. 하도 같이 협업해서 싸우다보니까 라피스랑 라즐리가 보고 배운 모양이지. 당연히 예상했지!”

 알파가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지각도 못 하는 사이에 스킬까지 닮아가다니. 알파는 곧 관심을 돌리려는 모양새로, 의자 위로 가방을 꺼내 열었다.

 “아오, 쓸데없는 이 보석들. 기타 인벤토리가 꽉 차서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베타, 이것들 다 버린다?”

 알파가 베타의 대답도 듣기 전에 가방을 뒤집어 꽉 차있던 보석들을 땅으로 내다버렸다.

 “반짝반짝하고 예쁜데….”

 베타가 바닥을 향해 짤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각종 크리스탈과 보석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다시 주울까?”

 알파가 다시 주울 생각은 절대 없는 모양새로 가방을 잠그며 물었다.

 “아니.”

 “경매장에 가면 아주 많아. 요즘 가격도 엄청 싸다던데. 대체 누가 요즘 저런 보석을 모은다는 거야. 일부러 거절 못하게 꼭꼭 보석 하나씩 쥐어주면서 생색은 다 내고. 아무래도 신전관리인이라는 사람, 정말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어.”

 “알파, 저건 아까 채집해서 캔 보석인데…”

 “알았어, 알았어. 다시 주울 게. 됐지?”

 알파가 허리를 숙여 보석들을 주워 담았다.

 “다시 주웠다. 이제 됐지?”

 “그리고 내가 이겼어.”

 “그래, 그래. 보석 다시 줍는다, 주워. 네가 이겼어 베타.”

 “아니. 라이카 내기. 내가 이겼다고.”

 베타가 전투분석에 흐르고 있는 시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미 5분이 훌쩍 지나간 채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알파가 낭패가 봤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봐봐, 알파. 이제 내가 나타나게 해볼게.”

 베타가 의자에서 일어나 대검을 휘두르며 수호대장 두엇을 쓰러뜨리자 신전 높은 곳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카 떴다. 오늘 내 연금술 과제까지 잘 부탁해, 알파.”

 “이건 말도 안 돼. 혹시 누가 몇 시에 나온다고 귀띔이라도 해준 거 아니야? 그러면 당연히 무효야 무효.”

 “아까 모험가 만났을 때 해준 말을 끝까지 들었어야지. 여기 몬스터 수 맵에 가득 차있을 때는 안 뜬다고 그랬잖아. 한 마리라도 잡았으면 5분도 되기 전에 떴을 거야.”

 으윽, 의자를 펴고 앉아서 농땡이를 피울 게 아니라 수호대장을 한 마리라도 더 잡아봤어야 했던 건데. 알파가 찰나의 후회를 할 때, 베타는 빙긋 웃으며 대검을 쥐었다. 내가 먼저 갈게! 허공으로 높이 날아오른 베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알파가 헛웃음을 지었다.

 “빨리 안 오면 내가 다 잡는다?”

  다른 것도 아닌 막타를 놓칠 수는 없지! 알파가 태도를 바짝 쥐며 라이카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주해주시며 부탁해주셨던 건데 엄청 엄청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려서 이렇게 완성을 했네요. 한참 막혀있다가 이번 제로하자 이벵으로 제로를 180까지 다 찍고 더 살아있는(?) 감각으로 쓸 수 있었던 글 같습니다. 부주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항상 연성 잘 보고 있어요 존잘님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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