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법x윌 / 메이플스토리 / 소설, 상플

[모법윌] Untitled



 손가락으로 살짝 스치기만 했는데도 찌르르 전해지는 고통이 아찔했다. 거울이 없어도 대충 예감이 갔다. 이쪽 볼에 하나, 반대쪽 관자놀이에 하나…. 이정도면 아주 푸르게 멍이 들었을 터였다. 입술은 계속 터져서 기분 나쁜 짠맛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이마도 네댓 바늘은 꿰매야 할 정도로 피가 철철 났는데, 이 감옥으로 데려온 누군가가 중간에 치료해준 모양이었다.
 음습하고 어둡고 차가운 곳이었다. 벽을 타고 똑똑 흐르는 물만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는 전부였다. 아주 규칙적으로 똑똑 떨어지는 물은 조금이라도 집중해서 시간을 가늠해보려는 윌의 정신을 휘젓곤 했다. 윌은 이에, 이곳이 어딘지 굳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항상 품에 들고 다니던 책은 온데간데없었고 챙겨 입었던 옷은 곳곳이 찢어져 당최 성한 곳이 없었다. 볼품없게 튀어나온 실밥을 뜯어내는 것만이 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욱신거리는 몸을 부여잡으며 윌이 차근히 생각을 정리했다.
 대적자를 뒤로하고 거울의 제일 깊은 곳까지 숨어들었을 때 예상치 못한 습격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붕대를 감은 신원 미상의 적…. 대충 예상이 가는 자는 있었지만 지금 와서 알아낸들 이미 지난 일이기에 소용없는 일일 터였다. 그 이후로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죽기 직전일 때 누군가가 살려서 이곳 감옥에 데려다 놓았다는 것- 이것만이 윌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었다.



 굳게 닫힌 창살 너머로 묵묵한 물체의 실루엣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실루엣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B가 말없이 윌을 내려다봤다. 분명 에스페라 거울 안에서 거미를 풀어 목숨을 해하려던 사람. 괴상한 논리를 늘어놓으며 묘한 칭찬을 늘어놓던 적. 그리고 끝내 같은 편이었던 동료에게 공격을 받아 쓰러져있던 군단장. 나무로 만든 낡은 상자를 의자 삼아 그 위에 걸터앉은 윌이 등을 굽힌 채로 어중간하게 앉아있었다.
 “상처를 계속 건드리면 덧날 거야.”
 아군을 치유하는 데에 능숙한 B는 잠깐 윌의 모습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상태 판단이 가능했다.
 “당신입니까. 이렇게 상처를…. 치료한 사람이.”
 묘했다. 서로 기력이 다 할 때까지 치고 박고 싸운 상대가 저 지경으로 된 걸 창살 너머로 살피는 게. B가 살짝 상체를 숙여 윌과 비슷하게 눈높이를 맞췄다.
 “다 알 건 없고 유능한 의사가 집도했다고만 알려줄게. 그니까 수술이 잘못 되었을 거라는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연합입니까.”
 “검은 마법사는 패배했어.”
 “알고 있습니다. 대적자인 당신이 마지막으로 끝냈겠죠.”
 쿨럭쿨럭.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윌이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기침을 내뱉었다. 윌의 기침이 한층 잦아들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던 B가 무언가가 짚이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누군가와 내통을 하고 있는 건가? 당신이 외부 소식을 접하는 방법은 모두 차단된 걸로 알고 있는데.”
 “굳이 내통하지 않아도 거기까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분의 뜻을 신실하게 받들던 사람이니까요.”
 수없는 기침으로 자세가 흐트러진 윌이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며 B를 또렷이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제가 여기에 있으면 됩니까.”
 “나가고 싶다는 건가?”
 “어둡고 습한 것쯤이야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겨울 정도로 아주 긴 시간을 기다리는 것 또한 제가 좋아하는 일이죠. 하지만 그건… 무언가 목표가 있을 때에만 해당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무기력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로 보내야하는 이 시간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것쯤은, 이해해줬으면 좋겠네요.”
 윌이 괴로운 듯 머리를 헝클었다. 하지만 B는 그 짧은 순간에서도 교묘하게 빛이 나는 윌의 눈동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에게 이해를 바란다, 이건가?”
 “무언가 목표하는 바가 있을 때 기다리는 건 오히려 즐거움일 테죠. 인피니티 스킬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마법사니까 더욱 잘 알 거구요.”
 “그래서 네가 거기 있는 거야. 그리고 아무 것도 쥐어주지 않는 거고. 나도 알아. 책 한 권이라도 옆에 있으면 덜 지루하고 재미있을 거라는 거.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너한테 그런 물건들을 쥐어주는 건 위험하니까. 그건 무기를 쥐어주는 것과 다를 게 없지.”
 “함께 전장에서 검을 섞은 것도 인연이라고 하던데, 그렇게 맺은 인연이 지금은 자비롭지 않은 모양이군요.”
 윌이 피식 웃었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B가 아무 말 없이 윌을 내려다보다가 출구로 향하는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감옥을 나서기 전 문고리를 붙잡은 B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다만 목소리로 윌에게 말을 전했다.
 “이 소식을 자비로 베풀 생각은 없었는데.”
 “….”
 “곧 하인즈님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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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16 첫 작성. 윌 감옥 일러스트 뜨고 작성한 글

- 저번에 데미알리 <당신의 숲>에도 썼던 방식인데 모전을 H(히어로), 모법을 B(비숍)으로 쓰는 거 좋아함. 아크메이지로서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언젠가 A(아크메이지)로도 쓰지 않을까

- 제목이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마음에 안 들어서 지워버림

- 사실 커플링으로서의 이름이 필요할까 싶었는데 난 여태 이렇게 써왔으니까 걍 모법윌 씀

- 이거 일러 떴을 때 너무 눈빛이 마음에 들고 오우 섹시 그 자체 걍 머리부터 발끝(은 안 나왔지만)까지 너무 좋아가지고 3일동안 반찬 없이 맨밥도 가능하다고 할 정도였는데 그래서 글을 쓰게 됐음. 일러 하나의 효과는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