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한x홍련, 백한홍련, 백홍

구름이 피워낸 꽃 (구피꽃) / 2차 소설, 상플

 

※ 오늘(7/10) 기준 무료분(64화)에서 처벌을 위해 격리된 백한이 만약 풀려난다면... 에 대한 가정이 들어가있습니다. 해석에 따라서는 유료분 분량이 들어간 것으로 보일 수 있음 (직접 언급 x)

 


[백한홍련] 연못의 밤



 코끝을 스치는 자연의 향이 좋았다. 바깥 공기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계절마다 돌아가면서 피도록 심어진 각종 화초들의 향이 한데 어우러지며 막 후원으로 들어선 백한을 맞이하고 있었다. 향기롭고 잔잔한 밤 풍경의 보름달이 유독 아름다웠다. 후원 연못에 보름달이 잠겨 아른거리고 있었다. 연못 건너편에 규칙적으로 걸린 등(燈)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살랑거렸다. 
 옥에서 풀려난 후 치료를 받고 의관을 정제하기가 무섭게 부름을 받고 달려온 백한의 시야에 후원 저 멀리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기품 있는 자세로 연못을 향하고 있는 시선의 주인은 아직 백한이 온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한껏 내려앉은 어둠 한가운데에서 마치 환한 빛과 같은 존재- 그것은 다름 아닌 주군, 홍련이었다.
 백한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홍련의 지근에 멈춰 섰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홍련이 반색하며 말했다.
 “달빛이 좋아서 이곳으로 불렀느니라. 혼자 보기엔 아까워서.”

 홍련이 앞장을 서고, 백한이 뒤따르며 연못 가장자리를 따라 걷자 곧 연못을 마주한 채로 놓인 작은 탁자가 보였다. 고운 천이 깔린 탁자 위엔 두 개의 잔과 두 개의 찻주전자가 놓여있었다. 탁자 주변에 놓인 등(燈)들의 포근한 불빛에 주위가 환했다. 연못 물결에 불빛이 일렁였다.
 “같이 마셨으면 하는 차도 있고.”
 홍련이 마저 덧붙이며 멈춰섰다. 백한은 홍련이 앉을 의자를 빼기 위해 한 발자국 서둘러 움직였다. 홍련은 백한이 대령한 의자에 앉으며 차분히 물었다.
 “상처는?”
 제때 치료하게 해주지 못한 것이 사뭇 마음에 걸렸다. 조금만 더 빨리 석방되었더라면. 아예 하옥되지 않았더라면- 금방 치료해줄 수 있었을 텐데.
 어의를 통해 백한의 상태를 직접 전달받을 때, 바로 치료하지 못해 상처가 덧난 거 같다는 귀띔이 내내 맴돌던 참이었다.
 “괜찮습니다. 아무렇지 않습니다.”
 여느 때처럼 환한 표정으로 넘기려는 백한을 향해 홍련이 짐짓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숨길 걸 숨기거라. 네 상처를 치료하며 얹어놓았을 약초의 향이 여기까지 맡아지느니라.”
 “그, 그렇습니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백한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향이 불편하시다면 조금 물러나 있겠습니다.”
 “아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니 염려 말거라. 앉거라.”
 홍련이 옆에 나란히 놓인 의자를 백한에게 권했다. 백한이 천천히 의자를 빼서 의자에 앉았다. 탁자 너머로 펼쳐진 후원 연못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홍련이 찻주전자를 기울이자 찻물이 짧은 소리를 남기고 홍련의 찻잔이 가득 찼다. 차분하게 찻주전자를 내려놓은 홍련이 백한에게 말했다.
 “몸 회복이 필요할 것 같아 병가를 허했는데 네가 사양하였다지.”
 백한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싶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오히려 빨리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옥되어있는 동안 제 임무를 다하지 못했으니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몸도 생각해야지. 네 몸이 강건해야 과인을 지킬 수 있지 않겠느냐.”
 홍련이 찻잔을 입에 대며 답했다. 그러한 홍련의 모습을 바라보던 백한의 얼굴에 밝은 빛이 돌았다. 
 “…유념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정말 괜찮습니다.”
 백한이 찻주전자를 기울였다. 은은한 꽃차의 향이 불쑥 얼굴에 다가왔다. 찻잔에 찻물이 가득 차자 보름달도 함께 잔에 담겼다. 찻잔을 그러쥐자 양손 가득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감옥에 있는 동안 걱정했습니다. 환궁은 무사히 하셨을지, 저 때문에 괜히 곤란해지시는 건 아닌지.”
 “거기서도 내 걱정을 했다니, 고맙다.”
 홍련의 고맙다는 말에 백한의 얼굴에 잠깐 미소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연못을 마주하고 나란히 앉은 둘의 대화는 눈앞에 보이는 물결처럼 잔잔했다.

 백한이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으려는데, 홍련의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음성이 백한을 향했다.
 “과인으로 인해 얻은 상처들이구나. 모두….”
 추포 과정에서 오라로 결박을 당하며 생겼을 손목의 긁힌 자국이 소매 근처에 뚜렷했다. 얼굴에 여태 본 적 없던 상흔 또한 같은 순간에 생겼을 상처일 터였다. 머리카락을 내려 가렸을 얼굴 반쪽의 흉터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홍련이 천천히 백한 쪽으로 몸을 틀어 앉았다. 백한은 홍련이 채 팔을 뻗기도 전에 상처 부위를 숨기려 소매를 늘리며 자신의 품으로 손을 가져갔다.
 “무사가 주군을 지키기 위해 얻은 상처는 모두 영광의 흔적입니다.”
 백한이 급히 손을 치우다 손끝에 닿은 찻잔이 빙글 회전을 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미처 찻잔을 비우지 못한 탓에 찻물이 함께 쏟아졌다. 백한의 상의와 홍련의 치맛자락에 짙은 차 얼룩이 졌다. 바닥을 향했던 찻잔은 잔디에 거꾸로 엎어지며 이내 잠잠해졌다.
 “송구합니다.”
 백한이 서둘러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굽혔다. 찻주전자 옆에 고이 개켜있던 손수건을 꺼내 든 백한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숙였다. 무엇보다 먼저 홍련의 옷에 흘린 찻물을 닦으려는데, 문득 고개를 올리니 홍련이 말없이 백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의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
 홍련의 손이 천천히 백한의 앞머리에 가닿았다. 한쪽 눈을 가린 채로 천하제일 검의 이름을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존재감이 없어 천대받던 시절, 모른 척 지나갈 수 있었을 텐데도 목숨을 걸고 불길을 헤치며 생겼을 흉터가 바로 손 아래, 얼굴 반쪽을 덮은 앞머리 아래에 있었다. 흉터가 있는 부분을 마치 쓰다듬듯 홍련의 손끝이 천천히 허공에서 움직였다.
 예상치 못한 홍련의 손길에 놀란 백한의 눈이 동그래졌다. 순간 세상이 멈춘 것처럼, 숨 쉬는 방법도 잊은 것만 같았다.
 “나는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마음이 무겁구나.”
 “…무거우실 것 없습니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요.”
 허공에서 시선이 만났다. 명경처럼 밝은 눈동자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참… 어렵구나.”
 “예?”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다쳐야만 하는 것이 네 일이라는 게… 이렇게 마주하니 쉽지가 않다.”
 “…….”
 “당연한 일이라지만, 당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홍련이 천천히 자신의 팔을 내리며 덧붙였다.
 “나의 사람이어서 고맙다.”
 옥사에 있는 동안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끼니를 거르는 것은 아닌지, 간수들이 함부로 대하는 것은 아닐지. 제때 치료하지 못한 상처가 덧나는 것은 아닐지.
 “내가 널 지키지 못하는 건 아닐지 걱정했다.”
 그러다 영영 잃게 되는 건 아닐지. 수많은 걱정들을 꾹꾹 눌러 담은 홍련의 말끝이 사뭇 서글펐다.
 “저야말로 전하를 지킬 것입니다. 전하를 두고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백한의 다짐은 든든했다. 주군의 뜻과 다르게 내쳐진다면 어떻게든 돌아올 것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앞에 있는 주군을 지키겠다고. 이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내 곁에 오래도록 있어다오.”
 홍련의 부탁이 마주 보고 있는 백한을 향했다.

 옷에 밴 차의 색이, 차의 향이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만 같은 밤이었다.





 

첫 구피꽃 글. 제목 짓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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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소재 꽃차는 나에게 이용당했다. 원래 계획했던 내용에 꽃차 소재만 살짝 끼워 넣었다... 는 중간에 쓰면서 감정 표현 두 문단과 스킨십 일부 부분을 통으로 날렸다. 언젠가 다른 소재 다루면서 쓰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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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백홍백 전력 참여. 지각함! 2회차 소재 “꽃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