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알리/AU] 장미의 주인 01
데미안 알리샤 / 메이플스토리 / 소설, 상플
“안타까운 인재를 잃었지만, 어쩌겠어. 스스로 그렇게 만든 걸. 나한테 실수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감히 뭘 잃어버려?”
손끝에서부터 차근히 전해 올라오는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서서히 익숙해지며 또 다른 온기로 남고 있었다. 어둡게 켜놓은 천장 전등의 빛이 총의 몸체를 살피며 움직일 때마다 금속 표면에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졌다. 도드라진 표면을 따라 한 번 더 금박이 입혀진 덩굴무늬를 따라 천천히 움직여보는 손가락이 총구 옆면에 그려진 빨간 장미 문양에 멈춰 섰다. 약간은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는 그 장미 문양을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누르곤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찾을 건 찾아야겠지. 당장 찾아와줬으면 좋겠어. 파란 장미가 감싼 총. 그건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니까.”
꾹 누르고 있던 손가락을 떼자 다시 원래의 색을 되찾은 자신의 손가락을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던 파란 눈의 소녀가 아직 할 말이 남아있다는 듯, 명을 받들곤 어두컴컴한 방을 빠져나가려는 서넛의 장정들을 가볍게 발끝으로 제지하며 웃어보였다. 가벼운 움직임에 소녀의 작은 발을 감싼 하이힐의 화려한 보석 장식이 반짝였다.
“그런데 궁금한 걸. 정말 그 전설 같은 이야기가 사실일지. 한 번 보고 싶지 않아, 너흰? 그 파란 장미를 소유하고 있을 자의 모습을 말이야.”
양 손을 의자의 팔걸이 위에 올리고 몸을 일으킨 소녀의 금빛 머리카락이 짧은 검정 드레스의 어깨 위로 스르륵 떨어졌다. 그 머리를 가볍게 손으로 넘긴 소녀가 자연스럽게 총을 손에 쥐곤 [Alicia] 라고 양각 새김된 자리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명령했다.
“파란 장미의 소유자가 누굴 찾고 있다고 한 것 같은데. 그 뒤의 이야긴 내가 더 해줄 필요가 없겠지?”
소녀의 물음에 말끔히 차려입은 장정들이 절도 있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럼 가보려무나. 소녀가 짤막한 웃음으로 배웅했다. 곧 자신의 총으로 고개를 돌린 소녀가 중얼거렸다.
“감히 누구의 총을 빼돌려, 그것도 쌍둥이 총을? 기껏 믿고 만들라고 맡겼더니.”
이제 뒷골목 생활도 이력이 날만큼 난 터였다. 몸을 쓰며 안 해본 일을 찾는 게 더 힘든 일임을 스스로는 자부할 수 있었다. 소식을 하나라도 더 접할 수 있을까, 싶어 따뜻한 한 끼를 챙길 틈도 없이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벌써 이런 생활을 한지도 어언 1년. 틈틈이 모아본 정보들은 그 얼개가 완전치 못해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이곳에 오면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자신을 강렬하게도 괴롭혀서,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이름, 데미안. 그리고 그런 자신을 동생으로 두고 있는 형, 데몬. 그를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긴 시간을 헤매고 있는 것인데-
“형씨, 형씨가 찾고 있다는 사람 이름이 데, 데 뭐라고 했더라.”
늘 공사장 일자리가 날 때마다 마주하던 익숙한 모습의 사내가 후줄근한 복장을 걸친 채로 어디서 구한 것인지 오징어 다리 한 쪽을 물곤 웅얼거리며 다가왔다. 꽤나 유용한 소식통이라 무언가 정보를 가져올 때마다 기대해볼만한 상대였기에 대강 시멘트 벽에 등을 기대어 서있던 데미안이 먼지를 뒤집어써 약간은 허름한 안대를 고쳐 쓰며 몸을 일으켜서 바로 섰다.
“소식을 들었어. 그 데, 뭔가 하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대.”
“누, 누구야. 어디 사는 누구야? 지금 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야?”
“진정하라구. 좋은 정보인 건 맞는데, 고급 정보일수록 좀 차근하게 접근해볼 필요가 있어.”
“어떻게 진정해-”
“소식이 처음 흘러나온 곳이 믿을만한 곳인 건 맞는데 그렇다고 그 곳이 안심할만한 곳은 아니라고.”
“상관없어. 그건 내가 판단한다. 말만 해. 어디야. 누구야!”
어쩌면 이럴 때를 위해 장만한 총이겠지. 어느 골목의 끝, 곧장 쓰러질 것 같은 판자더미 아래, 흙바닥에 대충 앉아있던 데미안이 남색 비단주머니에 넣어선 품속에 단단히 숨긴 자신의 총 한 자루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몸이라도 지키고자 푼돈을 모아 마련한지 얼마 안 된 총이었다. 대강 걸친 셔츠 위에서 겉옷이 움직일 때마다 만들어내는 주머니의 촉감을 몇 번이고 되새겨보던 데미안이 불쑥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선 조심스레 총을 꺼내들었다. 덩굴을 따라 나있는 가시들과 그 덩굴을 따라가다 보면 끝에 그려져 있는 파란 장미. 물론 총을 마련하면서 이런 외적인 면까지 신경써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 그냥 스스로를 지킬만한 총 한 자루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으니까. 그저 한밤중에 찾아가 문을 두들기곤 돈이 들었던 주머니를 불쑥 내밀고 달라고 했던 것이었으니까. 아마 아까의 소식통이 덧붙였던 말에 의하면 그렇게 총을 제작해서 팔던 자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는 소문도 흉흉히 퍼졌다고 했다. 뭐, 좋은 총 만들어줬으니 더 이상 볼일은 없겠지만, 별일이 없길 바랄 수밖에. 뒷골목의 세계는 늘 그런 일상들의 연속이었으니까.
[Alicia] 라고 양각 새김된 자리를 손끝으로 문질거리던 데미안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알리샤라... 총 제작자의 이름인가. 볼 때마다 생각나는 거지만 생긴 것과는 다르게 참으로 여성스러운 이름이군.”
소식통의 말에 따르면 긴 대로를 중앙으로 양쪽으로 난 집 중 파란 문에 빨간 문고리를 한 집을 찾아보면 된다고 했다. 그저 평범한 가정집 중에 가정집인 곳에 사는 사람이 대체 무슨 고급 정보를 알 것이며, 무엇이 안심할 곳이 안 된다는 건지 하나도 갈피가 잡히지 않은 채로. 곧 자신의 눈에 들어온 목적지 앞에 다가선 데미안이 깊은 숨을 들이쉬고는 똑똑, 가볍게 노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부로 보이는 깔끔한 차림새의 중년의 여인이 문을 열며 나타났다. 여인은 데미안을 발견하곤 상냥한 미소로 물었다.
“누굴 찾아오셨나요?”
상대의 물음에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말문이 막힌 데미안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여기 주인이 누구죠?”
데미안의 물음에 약간 당황한 기색이 어린 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그렇게 물어보시면, 제가 어떻게 대답해드리면 될까요?”
“...”
“별일 없으시면 문 도로 닫도록 하죠.”
“확인할 게 있습니다.”
닫기려는 문고리를 손으로 잡은 데미안이 차근히 입을 떼며 말을 이었다.
“장미의 주인을... 찾으러 왔다고 하면 됩니까.”
그런 데미안의 대답에 여인의 얼굴이 잠깐 핏기가 가심을 데미안은 알 수 있었다. 곧 큼큼거리며 목을 다듬고는 안정을 찾은 여인은 닫으려던 문을 오히려 활짝 열어주며 데미안을 안으로 안내했다. 데미안은 그런 여인의 안내에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는데, 바닥에 깔린 빨간 카펫이며 깔끔하게 놓인 여러 가구들을 보며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살피며 대체 자신이 오늘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손님이 온 거야?”
등 뒤에서 들리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에 데미안이 고개를 돌렸다. 남색의 교복자켓과 치마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금발의 소녀는 접시 위에 놓인 과자를 하나씩 집어먹으며 그런 데미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늘 약속이 있었던가? 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소녀는 불쑥 과자가 담긴 둥근 접시를 내밀며 먹지 않겠느냐고 과자를 권했다. 데미안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는데, 그런 데미안의 반응을 알겠다며 소녀는 도로 접시를 거두곤 총총히 부엌 저 안 쪽으로 사라졌다.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자신보다 앞장서서 걷던 여인을 따라가던 것도 잠시, 긴 복도에 자신을 안내하던 여인은 사라지고, 자신만 홀연히 서 있는 것을 발견한 데미안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좌우를 살핀 데미안이 긴 복도 끝에 나있는 문을 향해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만들어내는 발걸음 소리가 복도의 벽이며 천장이며 할 것 없이 크게 울리고 있었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다잡아보았지만 최대한 차분히 삼켜 넘기려는 침의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데미안은 자신이 품 안에 숨긴 총의 주머니를 꽉 잡고는 천천히 무게 있는 발걸음을 옮겼다. 곧 바로 앞에 다가선 문의 금색 문고리를 잡고는 힘을 가해 문을 밀었다. 문 너머론, 어둑한 방의 실루엣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는데, 조금씩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데미안의 등 뒤로,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겼다. 문틈으로도 새어나오지 않는 빛 때문에, 방 안은 완벽한 암흑에 잠겼다.
또각, 또각. 방향이 종잡히지 않는 와중에 굽 달린 신발의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데미안은 품속에 가지고 온 총을 향해 조금씩 손을 옮겼다. 공기의 긴장감을 재보는 것도 잠시, 어떤 정체모를 힘이 자신의 뒷무릎을 타격하는 걸 채 다 깨닫기도 전에, 데미안이 휘청이며 바닥으로 무릎이 꺾였다. 곧 자신의 이마 정중앙에 피어오르는 차가운 촉감에 데미안은 자신의 총을 꺼내려던 손을 멈췄다.
“놀랐니?”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려 부단히도 노력하는 데미안은 단지 대답은 없이 상황을 읽으려 노력할 뿐이었다. 곧 주변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앞만큼은 누군가에 가려 어둡다는 것에 생각이 닿을 때야, 데미안은 눈을 찬찬히 움직여 자신의 이마에 머무르는 촉감의 원인을 찾고자 했다. 반짝거리는 장식의 블랙 미니 드레스와 새하얀 손목, 그리고 그 손이 쥐고 있는 검정색 총...
“장미의 주인을 찾는다고 했니? 나도 찾고 있어, 장미의 주인. 이거 재밌지 않니? 지금 이 공간에는 장미의 주인이 두 명이나 있는 거야.”
데미안은 자신의 바로 앞에서 자신을 겨누고 있는 총의 겉모습을 차분히 살피며 놀란 기색을 숨길 수가 없었다. 새겨져있는 곡선 하나하나가, 지금 품안에 있는 자신의 총과 너무나도 닮아있었기 때문에. 찬찬히 고개를 들어 총을 쥔 자의 얼굴을 발견한 데미안은 또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까 거실의 소녀. 금발을 늘어뜨린 채로 반짝이는 청안으로 과자를 권했던 그 소녀가 무엇이 신난 것인지 한껏 들뜬 미소를 지어보이며 데미안에게 묻고 있었기 때문에.
“그니까 그 주인에게 물어야겠지? 나머지 장미는 어디에 있지?”
에픽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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