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시작 전 짤막한 작가노트>

나는 '데샤'로도 이 커플을 부른다.

대부분 기초적인 베이스는 데미안 군단장 외전 웹툰이고 (인게임 내에서는 많은 설정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다.)

한 편 단편으로 짧게 끝내려던 이야기는 점점 살이 더해져 적어도 세 편, 많게는 다섯 편으로 올릴 예정이다.

실은 완급 조절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걸 이번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는데,

내가 글을 쓰는 스타일이 에피소드나 소재를 생각나는데로 나열한 후, 다듬으며 차례대로 단계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인물들의 본성격에(알리샤는 대화지문이라도 많이 공개된 편이지만, 데미안은 주변 환경에 대한 언급과 구체적으로 성격을 보여줄만한 데이터가 부족한 편이다. 조금 드러난 것이라도 그 특징을 가능한한 살릴 수 있게) 어긋나는 면이 있을까 걱정되어 꽤 많은 부분에 수정에 수정을 가했다.

실은 인게임 내 다른 인물들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던터에, 갑자기 뇌리를 때린 커플링이라 뭔가 꽂힌 듯 마구 써내려갈 수 있는 꽂힘의 경지에 이른 상태에서 쓴 글이라 나에겐 또 의미가 깊다.



데미안x알리샤 / 메이플스토리 / 소설, 상플

[데미알리] 아프게 피어난, 01



어떤 이는 섬 중심에서 신성한 힘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생명의 기운이 넘쳐나는 이 땅을 지켜주는 어떤 존재가 그 곳에 살고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소문으로만 전해질 뿐, 정확히 섬의 중앙에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아무도 정확히 아는 자는 없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쉽게 기억치 못 할 백년 전의 전투.

어느 정도 남아있던 역사라 할만한 과거의 흔적들은 마음을 먹고 찾지 않는 이상, 찾지 못할 만큼 잊혀져버렸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 전투에서 완전한 세상의 파멸을 막아낸 중심에는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싸워낸 한 초월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초월자의 존재 또한 수 백년 전의 전투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 차차 지워져갔다. 


그 초월자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샤라고 했다.

전쟁에서 너무 많은 힘을 써버린 그녀는 이내 루타비스라는 곳을 만들어내고 회복을 위해 잠에 들었다.

아무도 방해 할 수 없는 곳.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곳.

전투 전의 힘을 회복하기위해 그녀는 스스로를 결계 속에 가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계의 보존은.. 알리샤가 원하는 만큼 길지 못했다.

고요를 깨며 결계의 공간으로 충격이 전해졌다.

깊은 휴식의 정도에 다다랐던 알리샤의 두 눈이, 급작스레 침입한 낯선 공기에 반응하며 조금씩 떠졌다.


"..누구야, 넌."

"여긴 너 혼자 뿐인가?"

"여길 어떻게 들어온거야?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던 알리샤가 벌떡 일어났다.

얼마 남지 않은 힘을 겨우 모아서 쳐놓은 결계를 그저 제 집 들어오듯 들어온 인간은 아닌 존재.

한 쪽 눈을 안대로 가리곤 특이한 피부색에 자주색 머리칼을 가진 한 소년.

자신이 넘치는 태도로 등에 칼을 메고는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알리샤를 향해 걸어왔다


"이런, 취향 한 번 고딕하군."

불쑥 들어와서 알리샤의 의자 앞에 서서는 조소를 날리는 소년이었다.


"나름 잘 쉬고 있던 것 같은데, 어때. 힘은 전만큼 충분한가?"

"무례하구나, 너. 이 곳에 쉽게 들어왔으니, 그렇지 않다는 걸 더 잘 알텐데."

"흠, 조금 아쉽게 됐군. 뭐, 그럼 다음에 오도록 하지."


처음부터 결계를 깨고 들어왔을 때 부터 느껴지던 기운.

알리샤가 수 백년전 전투에서 수없이 막아내던 그 기운이었다.

그 기운과 더불어 함께 머무는 또 다른 기운.

마족의 기운인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기운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센 기운..


빙긋이 웃어보이던 입이 곧 무표정해지더니 소년이 알리샤에게 손을 뻗었다.

서늘한 기운이 소년의 손에 모이는가 싶더니 이내 윽, 하는 소리와 함께 알리샤가 주저앉았다.

아직 스스로를 지켜낼만큼도 회복되지 않은 그녀였기에, 자신이 감지했던 기운이 몸을 잠식해와도 짧은 비명만이 그녀가 낼 수 있는 유일한 소리였다.


"너무 걱정마. 그저 넌 지금까지처럼 다시 힘을 회복하면 되는거야. 회복해도 마음껏 쓸 수는 없겠지만."

"..."

알리샤는 방금 자신의 폐부 깊숙한 곳을 찔린 고통으로, 아무 말도 없이 가쁜 숨을 내쉬며 멍한 시선을 땅에 내던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걱정마. 내가 결계를 깨버렸으니, 이 곳은 내가 따로 지켜주도록 하지."

"지.. 지켜준다는 말로.. 그럴 듯하게... 포장은 잘 하는구나."

"이런, 이렇게 약한거면 실망인데."

소년이 주저앉은 알리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난 그 쪽을 해칠 생각이 없어. 다만 그 쪽은 내 뜻만 따라주면 돼."

소년이 주저앉은 알리샤를 일으켜세우곤 다시 의자에 앉혔다.


"다음 만남을 기대하고 있겠어."


소년이 결계를 둘러보며 어지러이 피어난 덤불들을 걷어냈다.

이내 그 자리에는 녹이 슬어 삐걱이는 문이 생겨났고, 철컥 소리와 함께 문 중앙을 가로질러 굳게 잠겼다.




"거기, 너. 잡초. 보라색 잡초!"

"저게!"

소년이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누구의 명이지? 검은 마법사의 명이야? 그 정도 힘이면 너 혼자 주체할 수 있는 힘은 아닐테고."

"그걸 안다고 달라질 건 없어. 그리고 내 이름은 잡초가 아니고, 데미안이다."

"내가 니 이름을 안다고, 호칭이 달라질 건 없어. 이 잡초."

"기왕 내 이름을 알려줬으니 너도 이름은 알려줘야하지 않겠어? 그 쪽이라고 부르는 것도 별론데."

"너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날 가두는거야?"

"가는게 있으면 오는게 있어야지. 내가 그 쪽을 알아도, 그 쪽 입으로 그 댁 성함을 직접 듣는게 훨씬 모양새가 좋지 않겠어?"

"이렇게 사람을 가두면서 모양새를 찾는 너도 참 우습구나."

"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사람은 아니니까. 안 그래, 알리샤?"

"..."

"알리샤라... 요즘 누가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몰라. 다들 자기 살기 바쁘지, 누가 수 백년 전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겠어?"

"..."

"그런걸 보면 어때? 자기가 살리려고 했던 자들이 너 같은 존재가 있었다는 것 조차 기억해주지 못하면?"

"난 기억되기 위해서 싸운게 아니니까 상관없어. 애초부터 지성이 있는 존재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면 그 뿐일테니, 그 외의 것은 기대도 안 했어."  

"애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데미안이란 소년은 4개의 문을 만들고는 흔적도 없이 살아졌다.

그 소년이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밖에선 깔깔거리는 여인의 소름끼치는 목소리와 어수선하게 댕댕, 울리는 시계소리가 알리샤의 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지금껏 쉬고만 있었던 곳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알리샤는 문뜩 들었다.

쉬고만 있을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자들을 찾아야했다.

침입자의 뜻이든, 검은 마법사의 뜻이든, 알리샤 스스로의 의지에 반하게 움직이게 할 자들의 꼭두각시가 될 수는 없었다.


기운이 다 빠진 몸을 이끌고 새로 생긴 4개의 문을 차례로 열어보려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데미안이 깨고 들어온 결계의 구멍으로 나가려 할 때마다, 서늘한 기운이 온 몸을 찔러왔다.

의자 밑에 파묻혀있던 너덜너덜한 주문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짜 아예 갇혀버린거야..? 알리샤의 머리가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