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루주카] 환생의 고리


미친 듯이 잃어버린 친구들의 이름을 외치고 다녔었다.
딛고 있는 땅이 원망스러웠고, 눈 앞을 지나가는 구름들이 미웠다. 볼을 스치고 가는 바람은 마음 속 깊이 박혀있는 잔인한 기억을 자극했다.
처음엔 친구들을 그렇게 만든 적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끓었다. 다 그들 때문에 잃었던 것이니. 그런데 그 분노가 자책으로 변해 스스로를 찌르는 칼로 변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 나 때문에, 나의 선택으로 모조리 그렇게 된 것이라는 잔인한 마음의 소리. 그들은 날 살렸지만, 나에게 이렇게 살아있을 자격이 있는지 몇 번이고 스스로 되묻게 만들었다. 적어도 원수를 갚는 것, 그 정도는 해야 이렇게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 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새로운 스킬들을 연마했다.
눈을 감으면 그 셋이 달려와 와락 안길 것 같은 환상이 펼쳐졌다. 까르르 웃으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그 환상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기에, 현실로 돌아올 때면, 가슴을 부여잡고 속으로 꺼이꺼이 울었다. 현실로 돌아오는 꿈의 마지막은, 언제나 주카를 삼켜버린 회오리였다. 차라리 악몽에 그친다면, 자면서 온 몸이 땀범벅이 되는 것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을텐데. 그게 악몽 이상이라는 사실은 스스로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지금껏 얻어보지 못했던 힘이 온 몸을 자극해올 때면, 먼저 떠난 친구들의 모습이 하나 둘 스쳐지나갔고, 그 친구들을 그리 만든 적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힘은 오로지 그들을 응징하기위해 쓰일 것이기에, 모두 연마하는데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치명적인 공격을 받아내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수려한 절경 한 가운데 서서, 절대 잊을 수 없던 그 붉은 두 눈을 마주했다. 떠올릴 때마다 분노로 주먹을 떨게했던 그 눈빛이었으나, 막상 마주하니 그 떨림은 멎고, 살의가 온 몸을 감쌀 뿐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스킬들을 하나 둘 떠올렸다. 그 떠올림 사이사이엔 친구들의 모습도 섞여보였다.
치열한 결투 속 공격을 치고받음에 있어서 포기란 없었다. 상대가 쓰러지기 전까진, 쓰러질 명분조차 없었으니. 두 스킬의 진정한 완성은 그렇게 이루어졌고, 상대는 완벽히 쓰러졌다. 마지막 스킬이 완성을 위해 선 벼랑 끝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눈에 들어왔다. 쏟아질 듯 내리는 별빛 속에 선 여신의 모습을 향해, 마지막 남은 힘으로 발돋움을 했다.




그렇게 모든 스킬은 완성되었다.














온 주위가 컴컴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과연 죽은 걸까?




"여신님!"
"그대가 나의 힘으로 이 결계를 완성시켰습니까?"


점점 어둠 속을 비추는 단 하나의 빛. 그 빛을 등진 하나의 실루엣이 아루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루엣의 정체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머리 속에 하나의 존재가 떠올랐다.
편안하고 자애로운 목소리에 안온한 기운.


마지막 스킬의 완성을 별빛 속에서 도와준 그 존재. 바스테트 여신.






"이 곳은 어딘가요?"
"삶과 죽음이 공존할 수 있는 곳, 왕가의 진정한 주인만이 불러낼 수 있는 왕가의 결계 속입니다."
"저는.. 죽었나요, 살았나요?"
아루루의 눈에 실루엣이 점점 형체를 갖춘 여신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곳은 카고 왕가의 결계 속, 당신이 머무르던 세상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곳입니다."
"이 세계 밖의 저는.. 죽었나요?"
아루루가 조용히 묻는 말에 여신은 다만 고요히 웃어보일 뿐이었다.
그런 여신의 뒤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노오란 빛의 장막 속에서 미동없이 떠있는 두 형체의 모습이 선명해져갔다.


"데몬어벤져! 카이린!"
"이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지만.. 아루루 당신의 힘으로 이 결계 안으로 봉인해두었습니다."
손을 뻗어가며 그런 둘의 이름을 불러대던 아루루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또 다른 사람..


"주카, 주카는!"


아루루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꿈에서도 늘 그 꿈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그 존재. 나의 연인.
여신의 뒤에서 빛나던 노오란 빛이 이내 푸른 빛이 감돌더니 두 형체는 희미해지고, 하나의 형체가 선명해졌다.


파란 머릿결이 중력을 잊은 양 하늘하늘하게 흔들렸다.
푸른 물을 들인 드레스 예복 자락은 바람에 흩날리듯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머리엔 작은 왕관이 씌워져 있었고, 넓게 퍼진 드레스엔 촘촘히 박혀있는 화려한 보석들로 그 기품을 더했다.
팔을 늘어뜨리곤 평온히 눈을 감은 그녀는 미동도 없었다.


그런 주카가 머문 빛의 덩어리로 아루루가 돌진해선 주저앉았다.


"주카..."


대답없는 주카 대신 여신이 말을 이었다.


"제가 수호하는 주인의 부탁을 받들어 다시 되돌려보내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괜찮은거죠? 주카는, 괜찮은거죠?"
"카고 왕국의 주인들은 9번을 환생합니다."
"환생이라면.."
"환생을 하므로써 본래의 힘과 능력, 그리고 지혜를 순환시키며 사는 것. 그것이 왕국을 지키는 신성한 고리입니다."
"그럼 주카만큼은 다시 살 수 있다는 말씀.."
"하지만, 현생에서 잃고 싶지 않고, 지켜주고 싶은 인연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자신이 환생할 기회를 넘겨주고 싶다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래도 괜찮은거죠? 또 자신은 죽어야하는, 그런 부탁은 아닌거죠?"
"환생의 고리는 왕족의 힘을 유지하는 중요한 힘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환생의 고리를 파괴하며 앞으로의 환생을 포기하면서까지 다른 생명을 얻게되니, 주카 왕녀의 힘은 많이 약해지겠지요."
"꼭 그 방법 밖엔 없습니까? 그렇게 까지 해야하나요?"
"그 분의 의지가 너무도 굳세기에, 막을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저 편안히 스스로의 환생만을 택하셨다면, 몸도 영혼도 아프지 않고 환생하셨을터인데.."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고집만 안 부렸어도! 그러니 주카의 힘은 그냥 내버려두시고 제 힘을, 제 힘을 취해주십시오."
"더더욱 안될 부탁입니다. 왕녀께선 결코 허락치 않으실 겁니다."
"제발.."
아루루가 무릎을 꿇곤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아루루의 앞에, 여신 또한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췄다.




"왕녀께서 부탁하신 저 소녀와 소년은, 이 결계에 머물 자격이 충분치 못한 만큼, 이 곳이 아닌 왕국의 품에서 회복을 취한 뒤 안전히 부활할 것입니다."
"이건, 안됩니다. 이런 방법은 안돼요."
"왕실의 결단은 곧 바꿀 수 없는 세상과의 맹약. 그 뜻을 따르는 것이 결국은 옳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주카는 어떻게 되는겁니까?"
"이 결계 속에서 안식을 취한 후, 원래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실 겁니다."
"다행이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신님."




찬찬히 멀어져가던 여신이 다시 뒤를 돌아 아루루에게 물었다.
"스스로는 어떻게 될지 안 물어 보십니까?"
"어떻게 되든, 저는 중요치 않습니다."
"왕녀께서 그 소리를 들으면 화를 내실겁니다."
"그래도.."
"이 결계를 완성하신건 아루루님이시니, 마음을 먹고자한다면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실 수 있으실 겁니다."
"..."
"결계의 주인이신 왕녀님 또한, 회복되어 의식을 찾게된다면, 돌아가실 수 있으실겁니다."
"그럼 기다렸다가, 같이 가겠습니다."
"의인이 왕국의 부마로 계시니, 이 왕국의 앞날이 참으로 밝습니다."
"아직 부마까진, 아닙니다."
"이 결계의 완성은 능력으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왕실의 진정한 일원이시니 가능하셨겠지요. 상대의 목숨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고, 진정한 마음을 나누는 사이. 그보다 더 깊은 사이가 어디 있을 수 있겠습니까?"


멀어져가던 여신의 모습이 공간 속에서 사라졌다. 암흑의 공간 속을 비추는 것은, 푸른 빛으로 감싸인 주카의 모습과, 그 모습을 올려다보고있는 아루루. 쉽게 손을 뻗어 잡을 수 없던 빛덩어리였기에 아루루는 눈을 감고 주카의 이름을 되뇌었다.








아무 미동도 없던 주카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어렸다. 고개를 올리는 아루루의 눈동자가 그 미소에 반응했다. 입은 굳은 듯,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 강렬한 빛 속에서 주카가 살포시 눈을 뜨더니 두 팔을 벌려 웃어보았다. 아루루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팔조차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아루루의 시선이 먹물을 흩뿌리듯 까맣게 흐려지더니, 온 몸이 튕겨져나가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까와 변함없이 주카는 눈을 감은 채 평온히 빛의 기운 속에서 떠있을 뿐이었다. 잠깐 꿈을 꾼걸까? 아루루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자신의 앞에 있는 빛이 밝히고 있는 어둠만 있을뿐이었다. 꿈이어도 이젠 현실로 돌아올 때 땀벙벅인 꿈을 꾸지 않아도 되니 괜찮아진걸까?






"주카 왕녀와 꿈 또한 같이 꾸시는 군요."
이번엔 여신의 목소리가 아루루의 등 뒤로 점점 가깝게 들렸다. 곧 여신 또한 아루루의 옆에 앉아 주카를 마주보았다.


"왕녀께서 부탁하신 두 친구분을 왕국의 안전한 곳에 데려다드리고 왔습니다. 꿈 속의 왕녀님은 어찌 하고 계시던가요?"
"환하게 웃으며 절 반겨주는데, 저는 꼼짝도 할 수가 없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왕녀님께서 이제 기운을 차리고 영혼이 회복되셔서 꿈을 매개로 아루루님을 만나려 한 것이니, 그 영혼이 육체를 깨우며 곧 의식을 찾으실 겁니다."
"제 몸이 튕겨져 나갔는데, 그건 괜찮은건가요?"
"꿈에 취하면 현실로 돌아오지 않으려하는 법. 그래서 먼저 왕녀께서 밀어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아루루는 주카의 모습을 한없이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신 또한 그런 아루루의 모습을 살피며 시선을 같이 했다.
"여신님, 저 근데 아직도 한 가지 걸리는게 있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주카가 지금보다 약해지면, 많이 힘들어할겁니다."
"그렇겠지요. 아마 함께 모험을 떠나는게 힘에 부치실 겁니다."
"아까와는 다른 제안을 하겠습니다. 제 힘을 담보로, 여신님의 힘을 주카에게 일부 빌려주십시오."
"빌려달라?"
"예, 아까 제 힘을 취하라 하셨지만, 안된다 하셨습니다. 취하는게 안된다면, 담보로 잡아두곤 빌려주시는건 안되겠습니까?"
"거래.. 같은 겁니까?"
"거래라는 말이 기분 나쁘시면.. 새로운 힘을 갖는다고 생각해주십시오. 부마인 저의 힘은 여신님께 새로운 힘이 아니겠습니까? 새로운 힘을 갖게됨으로써 여신님이 강해지고 이 왕실이 강해질 수 있다면, 그건 더욱 고귀한 일이될겁니다."
"역시 의인이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원래 제 힘의 일부를 왕녀님께 빌려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여신이 빙긋이 웃어보이더니 눈을 감고는 작게 무엇을 중얼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카의 양 볼의 문양의 색이 잠깐 빛나더니 더욱 짙은 색을 띄었다.


"그래도 한동안은, 왕녀님 뿐만 아니라 부마께서도 몸조심하십시오. 아직 다 회복되진 않았으니까요."
"예."


빛 속의 주카의 형체가 환해지더니 차차 빛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부마께서도 돌아가실 시간이십니다."


마치 꿈에서 꺤 듯, 아루루는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넓직한 방은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고, 바닥은 번쩍번쩍 광이 나게 닦여있었으며, 벽은 고급진 문양으로 덮여있었다. 손에 집히는 이불자락또한 매끄러운 고급 원단이었다. 루미너스와의 결투에서 상한 몸이 다 회복되지는 않은 듯 뻐근했다. 이 고통이 실재하는 거라면, 방금까지의 꿈과 같은 상황 또한 실재해야했다. 이부자리를 박차고 방을 가로질러 뛴 아루루가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양 옆으로 긴 복도가 나 있었다. 복도의 복도 벽 중간중간에는 고급스런 촛대와 화병이 놓여있었다. 이 곳은 예전에 본 주카의 왕국.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없다. 꿈같던 상황들의 여신의 말이 맞다면, 데몬어벤져와 카이린도 있을 것이고, 주카도 있을 것이었다. 아루루는 복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형!"
아루루의 등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데몬 어벤져!
뒤를 돌아보자 그토록 보고싶었던 둘이 아루루를 향해 뛰어왔다. 양 팔에 카이린과 데몬어벤져가 달려들었다. 다들 말 없이 포옹을 풀지 않고 있을 뿐, 극적인 재회에 다들 숙연히 인사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진짜 다음부터 나만 살리겠다고 그러지 마, 진짜."




짧은 인사를 끝낸 후, 데몬 어벤져는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듯 바닥에 주저 앉았고, 너무 무리한 듯 하니 다시 회복한 후 보자며 카이린의 부축과 함께 반대방향으로 멀어졌다.






꿈이 아니라 사실이다.
이렇게 모두를 살린 주카도 살아있을 것이다!








아루루는 복도를 내달렸다.














한참 복도를 내달리다가, 아루루는 멈춰섰다. 다시 몇 발자국 뒤로 뒷걸음 치고는 닫겨있는 문을 주의깊게 쳐다봤다. 딱히 주변의 다른 문과는 달라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아루루에겐 달라보였다. 말로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달라보였기에, 아루루는 조심스레 양문을 밀어젖혔다.


열린 문틈 사이로 비쳐오는 강한 빛.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던 아루루가 다시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잔잔히 맡아지는 꽃의 향기. 빛의 자극이 차차 덜해지면서, 방 안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멀리 열려있는 창문 아래, 눈에 익은 드레스를 입곤 누워있는, 그리웠던 그 존재. 주카. 주카가 누워있는 이불자락 끝까지 가득 피어있는 여러 꽃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아루루가 등 뒤로 조용히 문을 닫고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눈 한 가득 담기는 존재. 매 걸음떨리는 숨을 가라앉히며, 행여라도 다리가 풀릴까 주먹을 꽉 쥐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꿈이 아닌 이 순간.. 주카가 있었다. 아루루가 침대 옆에 가까이 섰다.


작지만 규칙적으로 들리는 숨소리. 살아있다는 사실을 눈이 아닌 귀로도 확인 할 때, 아루루의 입이 작게 떨렸다. 모두를 잃은 순간부터, 현실과 꿈의 구분을 할 것 없이, 미친 듯이 불렀던 그 이름.


"주카야.."


짙어진 볼의 문양. 하늘거리지 않고 차분히 정리되어있는 머리칼. 잠깐씩 바람에만 흔들리는 옷자락까지, 여신과 함께했던 그 순간의 모습 그대로였다.


"주카야..?"
감겨만 있던 주카의 눈이 이름에 반응하듯 천천히 떠졌다. 공손히 모여있던 양 손도, 조금씩 움직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환한 빛이 담기는 눈동자에 곧 아루루의 모습이 담겼다. 아무 말 없이 아루루의 모습을 보고만 있던 주카의 모습에 아루루 또한 굳은 것처럼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움의 끝은 재회. 재회의 순간은 깊은 고요 속 눈동자만이 움직일 뿐..


"너.. 너.."
아루루가 긴 말을 잊지 못했다. 단지 눈물이 흘러내릴 뿐.




주카가 벌떡 상체를 세워 일어나더니 아루루를 와락 안았다. 아루루도 팔을 바짝 당겨 포옹에 답을 했다.
훌쩍이는 울음소리에 서로 현재의 존재를 확인하느라 고개를 파묻는 둘의 모습만이 있을 뿐..


포옹을 푼 주카가 약하게 주먹을 쥐더니 아루루의 가슴께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왜 네가 중요치 않아, 네가 왜!"
"어.. 설마 여신님께서 다 말 해주신거야?"


여신이 '왕녀께서 화를 내실 것'이라는건 들어서 예상하고 있었으나 이렇게 재회의 눈물바다 현장을 그 때문에 빨리 깰 줄은 몰랐었다.


"눈은 감고있었어도 다 들렸어. 네가 왜 중요치 않다는건데, 왜!"
"어, 그 뜻이 아니고.."


주카가 아루루의 품에서 몸을 들썩이며 엉엉 울었다. 아루루는 그런 주카의 등을 두들기며 울음을 가라앉히려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루루가 처음 정신을 차린 침대 위에, 아루루는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고, 주카는 그런 아루루 옆에 등을 기대곤 앉아있었다. 눈을 감은 아루루가 주카의 손을 붙잡곤 나지막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 잠을 자는게 그렇게 힘든 일인건 처음이었어. 하루라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었지."
"..."
"꿈에서는 정말 깨기 싫은데, 막상 깨기 직전에 그.. 순간들이.."
아루루가 말을 넘기려는 듯 눈을 감곤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말 안해도 다 알아. 이젠 그 전과 똑같이 모두 돌아왔으니까, 다 괜찮아. 괜찮을거야."
"이젠 나 같은거 살리겠다고, 그러지 마."
"너 같은게 어때서? 너야말로 널 가볍게 생각하지마."
"그래. 그니까 우리 둘이 서로 안 그러기다? 약속!"
주카가 알겠다고 끄덕이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등을 기대어 앉아있던 주카도 눈을 감고는 이야기를 이었다.
"회오리에 휩쓸리며 죽었었나봐. 여신님을 만났어. 왕가의 결계를 환생의 고리 때문에 내가 열었던 건데.."
"..."
"근데 너라면 결계를 완성하면서 내가 너희를 되살리게 도와줄 것 같았어. 그래서 결계를 안 닫고 기다렸지. 한 결계를 중복으로 열 수는 없을테니까."
"근데 그.. 고리를 깬건, 괜찮겠어?"
"아마 아버지께서 아시면, 정말 화를 내실거야. 하지만 내 결정을 후회하진 않아. 이렇게 너가 살아있으니까. 너도 잊고 친구들도 잊고 다시 살아간다는건 슬플테니까. 안 그래?"




서로 잠결을 왔다갔다 하는 듯 대화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내가 힘이 많이 약해져서 지금의 모습을.. 많이 못 해도 말이야."
"전처럼 다닌다면.. 내가 널 데리고 다니기 쉬우니까 더 좋지, 뭐."
"음.. 근데 넌 내가 이 모습인게.. 가장 좋다며?"
"아냐, 아냐.. 다 좋아."
고개를 휘저은 아루루가 잔잔히 웃어보였다.


"내가 꼭 예전처럼 회복해서.. 너랑 함께 갈게. 어디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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