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7월 서울 코믹월드에 나왔던 군단초월 Passage 앤솔로지에 제출했던 원고입니다. 총대님의 허락 하에 내용을 공개합니다!

아무래도 앤솔로지는 평상시에 연성하지 않는 조합이나 분위기로 써보려고 많이 시도하는 편입니다. 셋 다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라 쓰면서도 재밌었던 글이였어요. 원래는 2코 발간 예정이었는데 7코로 일정이 바뀐 터라 쓴지는 꽤 오래된 글입니다. 인쇄 들어가기 전에 표현 몇 개만 고쳐서 보냈어요. 윌에 대한 사랑을 종이에 인쇄해냈으니(feat.후기) 이 원고는 성공한 원고입니다 오예










메이플스토리 / 신군단장 / 데미안 윌 루시드 / 소설, 상플, 앤솔로지 / 8월

PASSAGE 군단초월 앤솔로지, 르비앙.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매미소리가 끊임없이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찔 듯한 더위를 조금 누그러뜨리자면 창문을 열고 바람을 들어오게 하면 되겠는데, 창문을 열면 더 크게 들릴 매미소리는 고통을 배가시킬 것이 분명했다.

  반쯤은 혼이 나간 모양새로 불규칙하게 호흡을 뱉어내던 윌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몸 구석구석에서 튀어나오는 찌르르한 아픔에 윽, 하는 짧은 비명을 삼킨 파리한 얼굴 위로 은빛 앞머리가 흘러내렸다.

 이름도 모를 어느 숲 구석에 버려지며 얻은 치욕은 고통 그 자체였다. 채 낫지 못한 상처의 아픔을 끌어안으며 패배감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처음 이곳에 눈을 떴을 때부터 있던 퍼즐 속에만 있었다. 사각 나무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퍼즐판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한없이 퍼즐에 정신을 놓고 있자면 그 순간만큼은 비참한 순간을 외면할 수 있었다.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허름한 구석을 빠져나온 그가 탁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누런 때가 엉긴 채로 반쯤 찢어져 너덜거리는 그의 그림자 기사단 단복이 바닥에 쓸리며 거친 소리를 남겼다.

 바닥이며 벽을 보아하니 나무로 지어진 집만큼은 분명한데, 켜켜이 쌓인 먼지의 정도를 가늠해보자면 오랫동안 인적이 끊긴 주인 없는 집이라는 것까지가 그가 할 수 있던 유일한 추측이었다. 가차 없이 자신이 버려졌음을 깨달은 것은 덤이었다. 분명 죽었다 살아난 것이니 중간에 누군가의 손을 탔음은 분명할 텐데 하필 보란 듯이 이런 곳에 버려두다니. 가뜩이나 비참한 상황을 더욱 강조해주려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물론 굳이 고마운 점을 찾자면,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음침하고 어두운 곳이기에, 자신이 부리는 거미들만큼은 맘껏 불러올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거미들은 패장을 버리지 않은 채 모여들어 각자 방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고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고 있었다.

 잠깐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땀으로 금세 온몸이 흠뻑 젖었다. 어쩌면 쉬도 때도 없이 스며드는 악몽에서부터 비롯된 증상일 수도 있었겠지만, 달리보자면 여름이기에 그렇다고 치부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낮인지 밤인지. 어두컴컴한 공간은 그의 시간개념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었다.

 습관처럼 안경이 있어야 할 콧대를 매만진 손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더니 이내 멈춰 섰다. 전투를 하며 산산이 깨진 안경알과 반쯤 휘어버린 안경테는 이미 그 수명을 다한 지 오래라 퍼즐판 옆 나무탁자 위에 고이 놓여있었다. 콜록거리며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세운 윌이 퍼즐판 앞에 몸을 굽히고 앉았다. 안경이 없어 뿌연 시야를 최대한 만회해보고자 윌이 미간에 가득 주름을 잡아 찡그리고는, 탁자 한구석에 수북이 쌓인 퍼즐조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수북한 틈에서 차분히 조각 하나를 꺼낸 윌이 아직 휑한 퍼즐판에 고개를 처박았다. 이미 수 십 번이고 맞추고 분해한 퍼즐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패배감이 파도처럼 숨이 막히도록 밀려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몇 번이고 같은 일을 반복해야만 했고, 반복하고 있었다.


 덜컹, 끼이익-. 갑작스런 문소리에 그의 손가락이 퍼즐조각을 든 채로 멈췄다. 닫힌 문소리 뒤로 조금의 망설임이라든지, 양해를 구하는 말 한 마디와 같은 것은 없었다. 곧장 들린 발걸음이 그의 옆에서 멈췄다. 

 인기척에 몸을 틀어 옆을 돌아본 윌의 빨간 망토자락에 산을 이루고 있던 퍼즐들이 쓸려 땅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아무래도 손님보다는 떨어진 퍼즐이 중요했던 모양이라 허리를 굽혀 바닥을 훑어내며 퍼즐을 주우려던 윌의 손앞을 불청객의 신발이 막아섰다. 불청객의 발밑에 깔린 퍼즐에 손을 뻗으려던 윌의 머리 위로 신랄한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떨어졌다.

 “이런, 어디 가서 군단장이라고는 하고 다니지 않는 게 좋겠어. 격이 떨어지잖아.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나야말로 진짜 초월자를 데리고 있지만 이 꼴이 나진 않았는데. 처참한 걸.”

 “참으로 오랜…만이군요, 데미안.”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윌이 대답을 뱉어냈다. 그런 윌의 반응을 내려다보던 데미안의 신발코 밑에 깔린 퍼즐을 으스러뜨리듯 비볐다. 발밑에 깔린 퍼즐 조각이 뭉개지며 너덜한 모서리를 보였다.

 “나를 모두가 잊어버린 줄만 알았는데, 당신이 먼저 올 줄은 몰랐습니다. 제 발로 찾아온 건가요? 아니면 검은 마법사님의 전언이 있는 건가요? 물론, 당신이 위대하신 그분의 말을 잘 따르지 않는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먼저 찾아와서 말을 걸어주다니, 의외네요.”

 “일이 다 틀어졌거든. 네가 그 쉬운 일 하나를 못 해서 말이야. 이렇게 처박혀서 퍼즐이나 맞추며, 불완전하게 쪼개진 둘을 감시만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 그거 하나를 제대로 처리하질 못한 너 때문에, 다 틀어졌거든.”

 “생명의 초월자만으로도 부족하다니, 욕심이 과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데미안 발치에 놓인 퍼즐을 향해 뻗은 윌의 손이 무색하게, 데미안이 자신이 밟고 있던 퍼즐 한 조각을 저 구석으로 찼다. 파삭, 소리를 내며 작은 먼지바람을 일으킨 퍼즐 조각이 바닥에 처박히며 잠잠해졌다.

 “욕심?”

 “욕심이 아니면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인간으로는 꿔서는 안 될 꿈을 꾸는 걸 우린 욕심이라고 하지요. 아, 마족에겐 예외가 되나요? 반마족에게도?”

 “뚫린 입이 아무 말이나 하라고 있는 입은 아닐 텐데. 하루 종일 퍼즐만 두는 주제에 지겹지도 않나? 밖으로 나갈 생각이라도 하지 그랬어. 내 검의 성능을 또 한 번 실험해보고 싶었는데, 네가 그러질 않아서 덕분에 아주 심심했거든. 하는 일이라곤 퍼즐을 맞췄다 허물었다, 맞췄다 허물었다…. 참으로 볼만 해. 거미의 왕.”

 예의를 찾아볼 수 없는 데미안의 대답에 잠깐 미간을 찌푸린 윌이 멍한 시선을 허공에 두고는 중얼거렸다.

 “‘참으로 볼만 하다.’ 라…. 그래서 ‘이 꼴’인 나를 계속 감시하고 있었던 건가요? 버려졌던 것뿐만 아니라 감시까지 당하고 있었다니,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은 아닙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흔들리던 거미줄들을 보며 대강 예상은 하고 있었거든요. 기왕 버려둘 거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이라도 같이 뒀으면 덜 심심했을 거 같군요.”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윌의 부르튼 입술이 터지며 핏방울이 맺혔지만, 그것은 신경 쓸 것이 아니라는 듯 윌은 핏자국을 손등으로 대강 문지르고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이쯤 되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루시드. 제가 꾸는 꿈을 구경하는 일은 퍽이나 재미있었겠습니다.”

 “할 줄 아는 게 대체 뭐길래 군단장이 된 건가 궁금했는데, 가히 눈치 덕분이라고 해도 되겠어, 윌.”

 “감시야 거울 세계에서 지겨울 정도로 하던 건데, 설마 당하는 걸 눈치 못 챌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요, 데미안? 아둔한 스스로를 바탕으로 남들도 그럴 거라고는 생각해주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루시드, 나비를 거두세요.”

 윌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곳곳에서 한참 흔들리던 거미줄들이 잠잠해졌다. 곧 사방에서 펑펑 터지는 작은 불꽃놀이와 함께 루시드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그 또한 환상이니. 재밌으셨나요?”

 “먹지도 못할 나비가 거미줄에 걸려 거미줄을 흔들면 그건 고문이지요. 저는 그런 고통을 저를 모시는 자들에게 주고 싶진 않습니다. 희망고문은 여태 내가 당했던 걸로도 족하니까요.”

 “이곳 생활은 어떤가요? 화려한 불꽃놀이도, 끝나지 않을 무도회도, 주체 못할 행복감도 없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재밌나요? 불쌍해라. 이런 누추한 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꿈만을 일부러 선사해줬는데, 행복하지 않던가요?”

 “현실과 꿈과의 처절한 간극 속에서 헤매던 제 모습이 참으로 재밌었겠습니다, 루시드. 결국, 이렇게 모였군요.”

 작은 고통을 내뱉으며 천천히 무릎을 펴 기립한 윌이 나머지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젠가 당신들을 초대하려고 마음을 먹고는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이른 초대를 한 셈이 되었군요. 제가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 다들 찾아와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초대를 했으니 환영을 해 볼까요. 조금은 추레하고 낡은 공간이나마 찾아주신 당신들에게 감사하며.”

 “환영은 필요 없어. 책임을 져야지. 제로를 관수를 못 해서 사단을 냈는데 단지 여기에 버려진 것만으로 만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 건가?”

 데미안이 칼자루를 차분히 쥐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데미안의 사설이 긴 것뿐이에요. 둘의 일은 둘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해요. 다른 게 아니고, 다음에 진행될 일을 전해주러 왔어요, 윌. 같은 분을 모시며 군단장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최소한 더 이상 방해는 되지 말아야겠죠? 아, 짙어질 패배감에 더욱 처절하게 괴로워하는 티는 내지 말아요. 더 불쌍해 보이니까.”

 “아직 제 환영사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저에게 할 말이 많은가보군요 다들.”

 “영양가 없을 게 뻔한 네 말을 내가 왜 들어줘야하지?”

 “들어줘야하는 게 아닙니다. 들어야만 하고, 듣게 될 겁니다. 당신들은 초대되었으니까.”

 윌이 품속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밑이 둥근 약병의 뚜껑을 매만지며 윌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전투능력이 모자라서 이렇게 되었죠. 저는 만회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당신들을 쓰러뜨리고, 증명해 보이려합니다.”

 “어디까지 더 불쌍해질 작정인가요, 윌?” 

 “결국 정신이 나간 모양이군. 감히 네 주제에 누굴 쓰러뜨린다는 거지? 저 밖에 몬스터 털끝 하나도 못 건드릴 수준이 지금의 네 수준 아니던가? 결국 천하의 윌도 미쳐버렸군. 물론 예전의 윌이 정상이라고 장담하진 않겠어. 하지만 지금처럼 같은 편에게 몹쓸 짓을 하겠다고 말하는 건,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리지.”

 “언제부터 군단장들끼리 동료애가 넘쳤었나요? 회의를 할 때도 좋은 소리 오간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못 밟아 야단이었죠. 데미안, 당신이 생각하기에도 서로의 목에 칼만 갖다 대지 않았을 뿐, 동료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지 않던가요?”

 “진짜로 공격할 셈인 건가요, 윌? 당신, 지금 실언한 거예요.”

 루시드의 차가운 눈빛이 윌에게 머물렀다. 윌은 상대의 눈빛을 그대로 받아내며 차분히 대답했다.

 “물론 정면대결을 할 만큼 전 어리석진 않습니다. 피를 보는 것도 싫거든요. 더 이상 질 싸움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품 안에 가지고 다니던 약이 이렇게 쓸모 있을 줄은 몰랐네요. 나인, 아니 알파에게 쓰려고 제일 마지막까지 두고 있던 건데, 당신들이 쓸모를 찾아줄 줄이야.”

 “빈 약병 가지고 장난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다고 내가 너한테 책임을 안 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빈 병이라. 안타깝게도 빈 병이 아닙니다, 데미안. 자신의 피붙이를 살리고픈 마음은 알겠는데 그 마음이 당신의 눈을 멀게 하는군요. 스스로의 수명을 줄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더 이상 잃을 게 없지요. 지식과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받았던 것들은 더 이상 저의 것이 아니고, 원래의 제 것마저 모두 잃었으니까요. 충성을 대가로 군단장들은 많은 것들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에겐 이제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으니까요. 단지 원하는 거라곤, 당신들이 제가 만회할 모든 것에 대한 초석이 되어주는 것뿐입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검은 마법사 밑에선 군단장이라고 해봐야 허울 좋은 체스판 위의 말에 불과하다고.”

 “기억나네요. 그에 대한 대답으로 당신은 나이트와 같다고 제가 말씀드렸죠. 루시드 당신은 폰과 같다고 했던가요. 판의 끝까지 가는데 성공해서 퀸이 될지 안 될지 궁금하다고도 했지요. 체스라,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물론 패배한 후 이곳에 있으며 절실히 느꼈습니다. 필요성이 다한 채로 쓰러져있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체스 말 같다고.”

 “그 때 네 입으로 너는 비숍이라고 이야기했었지. 그게 우스워서 여태 기억이 나더라고.”

 “그게 왜 우스울 일인지 모르겠네요. 비숍은 절대 자신이 처음 서있던 색깔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들과는 다르게 위대하신 그분과 다른 뜻을 품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우스울 점은 없다고 봅니다만.”

“그때부터 비숍임을 자처하겠다고 옷 양어깨에 십자가라도 달아놓은 거야? 아, 그래서 거울세계에서 의무대장 노릇까지 한 건가? 하지만 난 네가 아직까지도 폰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물론 지금은 그냥 폰도 아닌 죽은 폰. 연합은커녕 제로한테 갈려나간 쓸모없어진 말단 말이지.

허울 좋은 체스 말들 주제에 이래서 충성 경쟁이 의미가 없다는 거야. 필요한 것만 적당히 얻고 약간의 힘만 보태도 괜찮을 걸, 혼자서 불나방처럼 달려들다간 제 명줄만 짧아지거든. 그리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아무도 져주지 않아. 이곳에 버려진 거미의 왕이 잘 보여주고 있지. 체스 말 중에서 넌 제일 먼저 나갔지. 그것도 능력부족으로. 설마 만회한답시고 설치면 검은 마법사가 다시 받아 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체스판에서 쫓겨난 말이 다시 올라올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새 판을 짜면, 다음 게임부터는 다시 오를 수 있습니다.”

 약병의 뚜껑이 열리자 곧 독특한 향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루시드는 무언가 직감한 듯 소매로 입가를 가렸고, 데미안은 그런 윌이 우습다는 듯 뻣뻣이 마주보고 섰다.

 “이 공간에 따로 서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있으면서, 너는 멀쩡할 거 같아?”

 “자신감이 지나치네요, 데미안. 이 약을 만들면서, 제가 그것도 고려하지 않았을까요?”



“데미안 당신에겐 더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이 데리고 있는 초월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이런 일…까지 벌이는 미친놈일 줄은…. 진작에… 알았어야 했는데….”

 바닥에 쓰러져있던 데미안이 잦아드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데미안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무릎을 접고 앉은 윌이 흐려져가는 상대의 눈동자를 읽으며 말했다.

 “난 가져야겠어요. 보란 듯이 찾아낼 테고, 그래서 제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저번과 같은 실수는 더 이상 없을 거예요. 당신이 말해주지 않아도 찾아낼 겁니다. 아니, 그전에 세뇌약의 효과가 나올 거 같긴 하군요.”

 여전히 독특한 향이 흘러나오는 약병을 데미안 얼굴 앞에 밀어둔 윌이 몸을 돌려 벽에 쓰러질 듯 기대어 있는 루시드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덧붙였다.

 “여기 자신을 너무 과신한 자들의 패배 현장이군요. 과거의 저와, 지금의 당신들. 닮아도 별 도움이 안 될 걸 닮았네요. 아, 루시드.”

 “축제는… 계속 되어야만… 해….”

 “나비는 날개를 갖게 되어 날게 되는 순간부터 몸을 사릴 줄 알아야 하죠. 몸이 떠오르기 위해 갖게 된 날개는 제 몸보다 너무 커서 자칫 잘못하다간 상하기 십상이니까요. 안타깝게도, 한 번 잡혀 날개를 상한 나비는 더 이상 창공을 날지 못하게 된답니다. 당신이 위대하신 그분의 세계를 미리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어땠나요? 그것만 생각하면 참으로 궁금해서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돌려놓아야 하는데…, 이렇게 쓰러지면… 안 되는…….”

 “걱정 말아요. 당신이 없어도 축제는 영원할 테니까. 제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잠잠해진 둘을 내려다보며 윌이 사늘하게 말을 내뱉었다.

 “저를 이렇게 버려두고 거울세계를 나오는 나인과 베타를 만나러갔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저를 보란 듯이 무시하고 그들에게 제안을 했다고 하던가요.”

 “네가 망, 망치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어.”

 아직 대답을 할 만큼 정신이 남아있는 데미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윌이 말했다.

 “반마족에겐 약이 조금은 약한 모양입니다. 앞으로 이 약을 쓸 일이 없었으면 하지만, 참고하도록 하죠.”

 “미친… 놈.”

 “미쳤다, 라…. 언어권에 따라서는 비숍을 ‘Fou’ 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광적인’ 이라는 의미 그 자체라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니지요.”

 점차 미동을 잃어가는 둘을 향해 구석진 곳에서 집을 틀고 있던 거미들이 서서히 몰려들었다.

 “거미는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습니다. 집을 짓고 기다리지요. 당신들이 찾아와줘서 기쁘네요. 오래 기다렸습니다.”

 쓰러져있는 데미안의 목도리를 잘 정리해주며 윌이 중얼거렸다.

 “천천히 스스로 생명의 빛을 꺼뜨릴 테니까, 제가 더 이상 할 일은 없어 보이네요. 제 손을 더럽히는 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때 륀느가 그랬죠. 스스로 싸우지 않은 나의 패배라고. 이번만큼은…… 온전히 제 승리가 될 겁니다. 당신은 틀릴 거예요, 륀느.”



 “아, 비숍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아십니까?”

 “…….”

 물론 상대의 대답을 바라며 물은 것은 아니었다. 비웃음 어린 승리의 미소가 친절하게 대신 답했다.

 “체스판 밖의 비숍 말입니다. 모험을 함께하다 동료가 죽거든, 죽은 자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주는 비숍이요. 능력이 닿는다면 스킬로써 동료를 부활시킬 수도 있지요. 이번만큼은 제가 기꺼이, 그 비숍의 역할도 하고 싶네요. 다른 의미에서 말이죠.”

 바닥에 뒹굴던 약병을 정리하며 윌이 덧붙였다.

 “저는 제가 거미의 왕인 게 자랑스럽습니다. 8개의 다리. 8은 곧 무한함(∞)을 닮았으니까요. 영원한 삶, 끝없는 삶을 그 자체로 표현한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데미안, 카시야스가 어찌 살아있는지 궁금하다고 했죠? 이제 곧 알게 될 겁니다. 보여드리죠. 거미와 거미줄을 가진 자는 제 손길이 닿은 자…. 다음에 만날 때 당신들의 모습이 기대가 되는군요. 위대하신 그분이 그러셨던 것처럼, 저는 궁금합니다. 이렇게나마 다시 저의 자리로 돌아간다면 더한 지식 너머의 세계를 엿볼 기회가 생길 지도 모르죠. 아, 검은 마법사님을 뵈러 갈 시간이 가까워졌군요. 간만의 알현이라 설레기까지 하네요.”

 너덜너덜한 옷의 매무새를 다듬은 윌이 방을 한 번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다시 체스판 위에 올라서 볼까요? 새 게임을 시작하는 게 좋겠군요. 음, 나머지 퍼즐은 천천히 맞춰보도록 해야겠어요. 이제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으니까요.”












<후기 페이지 중 일부>


자신의 원고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 팀플이 망하는 이유.passage

이번 겨울 업데이트 떄 윌이 나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공식님은 떡밥을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 소식 없는 윌은 뭘 하고 있을까 + 제일 윌다운 복귀 방법은 뭘까 + 군단장에게 협업이라는 건 가능할까 = 제 원고

후기

- 거미♥윌 예쁜 사랑 하세요. 내가 정말 윌 많이 좋아하는데 떡밥이 더 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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