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x루시드 / 메이플스토리 / 소설, 상플

[윌루시] 나비의 선의

- 르비앙 -


# 신샤몽님의 썰을 차용했습니다


 해가 지고 만물이 휴식을 청할 때, 도리어 현란한 가락에 맞춰 분주해지는 곳이 있었다. 꿈의 도시라 불리며 모두가 행복을 느끼며 밤새도록 춤과 음악 및 각종 오락과 술과 함께 뒹구는 곳, 레헬른. 각자 누구의 옷이 더 고급스러운지, 누구의 가면이 아름다운지 뽐내기에 여념이 없었고 어느 디저트가 더 달고 맛있는지, 끊임없이 먹으며 주체 못 할 행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데에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게 돌아가는 레헬른 시가지를 시계탑에서 내려다보며 까딱까딱 손가락을 움직이는 실루엣이 있었다.

 손에 든 와인 잔은 손가락이 박자에 맞춰 까딱거릴 때마다 붉은 파도가 넘실거렸다. 천천히 입가에 와인 잔을 가져간 실루엣의 입가에 스멀스멀 옅은 미소가 피어났다.

 “꽤 값나가는 와인인데, 먹기 싫다는 사람한테 강요를 할 수는 없고.”

 루시드의 음성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시계탑 최상층에 위치한 방은 나름 응접실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한쪽 벽면의 벽난로 앞에서 시작되는 붉은 융단의 경계는 정갈한 대리석 바닥 대부분을 덮고 있었다. 벽을 따라 곳곳에 놓인 수십 송이의 장미 화분들 위에는 어김없이 새장이 달려있었고, 애처로이 방황하는 분홍 나비들의 날갯짓만이 정적인 공간의 몇 안 되는 움직임이었다.

 발코니 쪽을 향하고 있는 쇼파는 보라색과 황금색의 줄무늬가 매치되어 더욱 고급진 모습이 돋보였고, 쇼파 앞에 놓인 낮은 보라색 테이블도 쇼파와 어울리는 한 쌍을 이루고 있었다. 쇼파에 말없이 앉아있는 상대를 향해 루시드가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겼다. 붉은 융단이 루시드의 걸음마다 남는 구두의 소음을 줄여주고 있었다. 조금 오른 취기에 규칙적이진 않았지만 나름 루시드의 걸음은 직진을 하고 있었다.

 “대작은 꿈도 못 꾸겠죠? 또 혼자 마시게 생겼네.”

 쇼파에 주저앉으며 루시드가 와인 잔을 내려놨다. 어느 새 비어버린 잔을 채우려는 찰나, 앉아있던 상대의 손이 와인 병을 집으려는 루시드의 손을 잡았다.

 “벌써 두 병째입니다. 아무리 축제가 좋고 술이 좋다지만, 좀 과해 보이는군요.”

  깔끔하게 접어 올린 소매의 주인이 루시드를 막아섰다. 답답할 정도로 목까지 채운 검정 수단(Soutane)을 입은 윌이 한심하다는 듯 루시드를 쳐다봤다. 평상시와 다르게 이마를 훤히 보이도록 깐 앞머리가 조금은 어색한 것 같다는 루시드의 생각도 잠시, 루시드는 윌의 손길을 쳐내며 술병을 기울였다.

 “그니까 같이 마시자고 했잖아요. 안 먹는다고 한 건 그쪽이고.”

 윌은 그런 루시드를 말릴 수 없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더니 쇼파에 등을 기댔다. 가지런히 접어서 가방과 함께 옆 자리에 둔 붉은 망토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황색 십자가가 잘 보이도록 망토를 정리한 윌이 팔짱을 끼며 발코니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윌을 흘끔 쳐다본 루시드가 와인 잔을 잡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어디 가서 내가 홀대했다고 하진 말아요. 술 안 마신다고 해서 이렇게 차도 내줬는데.”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찻잔의 물결이 잔잔했다. 윌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와인 잔을 든 루시드가 쇼파 뒤쪽으로 난 넓은 공간을 향해 가볍게 춤을 추듯 너울너울 발걸음을 옮겼다. 공간을 휘적이며 한 모금 두 모금 입가를 축이던 루시드는 틈틈이 윌의 뒤통수를 관찰하는 중이었고, 윌은 그런 루시드의 시선을 의식한 듯 묵묵히 발코니 밖의 불꽃놀이를 보고있을 뿐이었다.

 윌이 레헬른에 온지도 어언 한 달째였다. 붉은 안개가 그치길 기다리며 레헬른에 머물던 시간이 예상치 못하게 늘어난 터였는데, 루시드는 그런 윌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마다 축제 삼매경이었다. 축제의 3요소인 춤, 음악, 술 중 어느 것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 윌에게 루시드가 대접할 수 있는 건 단출한 차 한 잔 정도였다. 단 것에도 흥미가 없다며 간식을 마다하는 윌 앞에서 루시드는 각종 카나페와 마카롱을 집어먹으며 재미없는 말동무를 해주는 것으로 손님에 대한 주인의 예의를 보일 뿐이었다.

 “…차에….”

 “네?”

 “…차에 독을 탔군요.”

  덜그럭 찻잔이 움직이는 소리에 방 중앙 부근까지 춤을 추듯 발걸음을 옮겼던 루시드가 천천히 윌을 향해 다가왔다. 윌의 어깨 너머로 부르르 떨다가 숨이 멎는 작은 거미가 보였다.

 “당신의 거미들 참 쓸모 있네요. 기미(氣味)까지 봐주고.”

 “하하하….”

 조금은 호탕한 모양새로 웃는 윌을 향해 루시드가 빙긋이 웃으며 친절하게 덧붙였다.

 “맞아요. 독 좀 탔어요. 맛은 모르겠네요. 내가 먹어보질 않아서. 먹고 좀 알려줄래요?”

 호탕한 웃음기가 가신 윌이 차 손잡이에 손가락을 걸며 천천히 컵을 입가로 들어올렸다. 차분한 빛이 서린 윌의 눈가가 담담했다. 언제 다가왔는지 와인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루시드가 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 걸음 가량 거리를 둔 채로, 루시드가 빙글거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날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

 “사랑한다면… 이런 선의는 거절하지 말고 받아줘야죠. 그게 진정한 사랑 아닐까요?”

 잠잠히 루시드의 말을 듣고 있던 윌의 입술이 찻잔에 닿았다. 약간의 망설임도 잠깐, 윌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찻잔이 입가로 기울었다. 채 마시지 못한 차가 한 줄기를 그리며 턱 라인을 타고 목 안쪽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탁, 소리가 나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잔 안은 반 이상이 비어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윌은 이내 소매를 입가로 가져가 닦았다. 윌이 하는 양을 내려다보고 있던 루시드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맛이 어때요? 가기 전에 한 마디는 해줬으면 좋겠는데. 선의에 대한 소감 한 마디, 어렵지 않잖아요?”

 잘 정돈된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 있던 윌이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루시드를 향해 다가왔다. 두 걸음 정도를 두고 있던 둘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도 쉽게 윌이 다가감으로써 줄어들었고, 루시드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린 윌이 루시드의 얼굴을 향해 훅 다가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윌의 입술이 루시드의 입술을 찾았다. 뒷걸음질 치려는 루시드의 양팔을 잡은 윌의 손길은 어느 때보다도 능숙했다. 어느 때보다도 짙은 윌의 향수 냄새가 강하게 밀려왔다.


 두 손으로 윌의 가슴팍을 밀어낸 루시드가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소리 질렀다.

 “뭐하자는 거예요?”

 입가를 닦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곧이어 올라오는 딸꾹질에 루시드는 아예 손으로 입을 가렸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원치 않게 마셔버린 차는 이제 손 쓸 길 없이 목을 타고 넘어간 터였다.

 “글쎄요. 제가 뭘 원했던 걸까요. 당신이 내게 원했던 거랑 똑같은 걸 원한다면 들어줄 건가요?”

 비릿하게 윌이 웃었다. 오늘 본 얼굴 표정 중 가장 생기가 돌고 있었다.

 “클, 클리너를 부르겠어요. 아니, 누가 됐든 해, 해독제가 있는 사람을 찾으면-”

 “그렇게 흥분하면 독이 더 빨리 돌 텐데요.”

 윌이 안타깝다는 듯 조소와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초에 나를 정말로 많이 죽이고 싶었나보네요. 해독제도 없이 나한테 독을 먹일 생각을 하고.”

 “나, 나는….”

 루시드가 쇼파 팔걸이를 짚으며 몸을 지탱하려했지만 이내 쇼파 위에 주저앉았다. 이유 모르게 터진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렀다.

 “…당신만은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털썩 앉은 루시드를 내려다보며, 루시드가 마셨던 와인 잔으로 입가심을 한 윌이 벽에 놓인 화분을 향해 머금고 있던 와인을 뱉었다. 루시드의 말이 우습다는 듯 윌이 대답했다.

 “사랑만큼 거추장스러운 감정이 어디 있겠어요. 당신 정도면 알 줄 알았는데.”

 빈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윌이 루시드 옆에 앉았다. 구겨진 옷깃을 펴며 윌이 덧붙였다. 만족스러운 웃음이 온 얼굴에 가득했다.

 “사랑이라…. 내가 당신을요? 이 잘난 세 치 혀로 그럴듯한 속삭임을 만드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은 거, 당신이야말로 잘 알잖아요.”

 루시드가 목이 타는 듯 속을 부여잡았다. 불규칙한 숨을 내뱉으며 상체를 겨우 지탱하고 있는 루시드를 바라보며 윌이 다정하게 말했다.

 “너무 빨리 쓰러지진 말아요. 나는 오래 보고 싶은데, 벌써 쓰러지면 아쉽잖아요.”

 팔을 쇼파에 뻗어 몸을 일으키려던 루시드가 이내 맥없이 주저앉았다. 가물거리는 정신을 겨우 수습하려는 노력도 잠시, 루시드의 상체가 윌을 향해 쓰러졌다. 어느 새 차분한 표정을 되찾은 윌이 말없이 한 팔로 루시드를 안고 있었다. 반대쪽 팔을 뻗은 윌은 능숙하게 자신의 가방을 손으로 훑었고, 곧 주사기와 앰플 한 병을 찾아냈다.


 루시드를 쇼파에 가지런히 천장을 보고 눕힌 후, 주사기 바늘의 캡을 입으로 문 윌이 능숙하게 주사기 바늘을 꺼냈다. 투명한 액체가 담긴 앰플 상단에 바늘을 찔러 넣은 후, 피스톤을 조작하여 주사통에 약을 담은 윌이 루시드의 팔꿈치 안쪽을 살피더니 천천히 혈관을 찾아 주사를 놓았다.

 “…그러니까 나를 그런 거추장스러운 감정에 빠뜨리지 말아요.”

 쓸모를 다한 주사기 바늘에 대충 캡을 씌운 윌이 앰플과 함께 주사기를 테이블 위에 던지듯 올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고 깔끔히 정리되지 않는 감정은 혼란스럽기만 하니까… 둘 다에게 좋을 게 없잖아요?”

 쇼파 옆 의자에 앉아 해독제를 찾기 위해 헤집었던 가방을 정리하던 윌의 시선이 머리 부근에 놓여있는 자신의 붉은 망토에 머물렀다. 잘 접어놓았던 망토를 넓게 펼친 윌이 루시드의 어깨를 경계로 망토를 덮어주었다. 망토에 달린 끈이 길게 쇼파 아래로 늘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끈을 다시 쇼파로 올리며 루시드에게 핀잔을 주듯 윌이 말했다.

 “그리고 제발 헛된 짓 좀 하지 말아요. 그러다 나도 당신을 정말 죽이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차분한 호흡을 되찾은 루시드의 얼굴에 점차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정상으로 돌아오는 루시드의 모습을 말없이 보던 윌이 하아, 한숨을 쉬고는 발코니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여전히 화려한 불꽃이 화려하게 타고 있었다. 밤하늘을 가로질러 피는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윌의 두 육각 렌즈에 오래도록 너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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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괜찮은 게 생각나는 게 없어서 방금 전까지만해도 <차에 독을 탔군요> 가 제목이었음.. 뭔가 더 적절한 제목이 떠오르면 좋으련만..

영화 야연에 나온 대사 관련해서 썰 푸신 걸 윌루시로 보고 싶어서 썼습니다. 어떤 장면인지 궁금해서 영화도 직접 보고 쓰기 시작함

어쩌다보니 이 글이 윌루시로 완성된 첫 글이 되었네

퇴고가 엄청 필요한 글은 아닐 거 같은데 자고 일어나서 다시 보고 이상한 부분 있으면 고칠 예정

깐 윌(에스페라 헤어) + 검빨(차도제로 복장) 으로 보고 싶음 뭔들 안 보고 싶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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