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x루시드 / 메이플스토리 / 소설, 상플


[윌루시] 사랑한다 말해도

- 르비앙


 난 네 앞에 서 있어

너는 생각에 또 잠겨 있네

함께 있어 더 외로운 나

어쩌다 이렇게


 난 네 앞에 서 있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채

떠오르면 또 부서지는

수없이 많은 말

♬ 사랑한다 말해도 - 김동률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루시드의 눈동자가 공허했다. 멍하니 허공을 방랑하던 시선이 가는대로 따라가자니 익숙한 사람의 뒷통수가 보였다. 모를 수가 없는 은발의 주인공. 윌의 뒷모습이었다. 윌의 어깨너머로 응급실이라는 단어가 선명했다. 윌은 데스크에서 누구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루시드 그런 뒷모습을 보다가 이내 몸 반대쪽으로 돌려 돌아누웠다. 이불을 가슴팍까지 끌어 모은 채 자는 척 눈이라도 감아보려 했지만 주변의 소음에 의식은 더욱 또렷해질 뿐이었다.

 등을 보이고 누운 루시드를 향해 윌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이미 알고 있었다. 루시드가 자는 척 하는 것쯤은. 이제 호흡도, 맥박도 정상으로 돌아왔을 테니 한 번 안부를 물을 수도 있겠지만,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말없이 베개에 파묻힌 분홍 머리칼의 주인공을 바라보다가 윌이 도로 데스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아, 하고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입고 있는 회색 목폴라 니트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시침이 반 바퀴를 돌았고 분침과 초침은 소리 없이 바늘 끝 방향을 돌리고 있었다. 루시드는 아까와 다른 2인실로 옮겨져 병원 침대에 앉아있었다. 윌은 침대 옆을 서성거리며 식사라도 챙겨줘야 할지 혹은 불편한 건 없는지 의례적이게 이것저것 말을 걸지만 루시드는 말없이 고개만 내저었다. 곧장 찾아온 어색한 침묵에 윌은 자기가 퇴원수속을 밟고 오겠다며 걸려있던 외투를 집어 들고 자리를 떴다. 윌이 사라진 문만을 말없이 바라보는 루시드의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볼을 타고 흘렀다.

 곤색 코트를 입고 문밖 복도를 하염없이 걷던 윌이 잠시 멈춰선 후 벽에 몸을 기댔다. 자신이 지나온 복도를 바라보자니, 벽 너머로 있을 루시드가 있을 병실이 그려졌다. 어찌나 멀게만 느껴지는지.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한숨소리가 큰 게 언제부터였던가. 코트 양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조금은 한참을, 윌은 벽에 기댄 채 서있었다.


 이제는 병원 밖으로 나온 둘이었다. 하염없이 걷기만 했다. 윌은 두 세 걸음 앞서서 걷고 있지만 곁을 내어주지 않고 홀로 걷고 있었다. 주머니 속에 틀어박은 각자의 손이 더욱 시렵기만 했다. 한때는 나란이 발을 맞추며 함께 걸음을 걷던 적이 있었는데. 두 손을 맞잡고 한 사람의 코트에 부여잡은 손을 집어넣으며. 빙판길에 넘어질세라 천천히 걸음을 걷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건 너무나도 오래된 이야기처럼.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너무 많은 권태로움만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과거의 회상에 각자 엉켜버린 둘만이 도로에 오롯했다.

 윌이 길을 가다가 멈춰서면, 루시드도 두 걸음 뒤에서 멈춰섰다. 윌이 한숨을 쉬면, 입김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루시드는 그런 윌의 등을 한참 바라보다가, 기어이 툭, 두 눈에서 눈물을 떨어뜨렸다. 윌은 등 뒤의 루시드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알지만, 돌아보지 않고 애써 모르는 척 신호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어찌나 무딘지, 도통 변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루시드는 누가 봤을세라 도톰한 장갑이 덮인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핑크색 코트 위로 떨어진 눈물방울들은 옷감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바닥으로 모조리 떨어졌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둘은 묵묵히 겨울의 바람을 맞고 있었다.

 “몸 잘 챙기도록 해요.”

 무수한 침묵 끝에 윌이 말했다. 말이 끝난 후 이제야 잠깐 몸을 돌려 루시드를 바라본 윌은, 루시드가 대답 대신 끄덕인 고개를 답으로 받았다. 이제 가봐야겠다며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이라도 한 마디 더 붙여야할까 싶던 윌은 이내 사족을 그만 붙이기로 마음을 먹는다. 또 연락할게, 와 같은 말도 지금 상황에서 매우 쓸모없는 말인 걸 알기에, 문장을 모조리 삼켜야만 했다.

 애정이 사라진, 거리감만 남겨진 너무나도 형식적인 배웅은 그렇게 그곳에서 끝이 났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함께한 시간들이 그저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금. 하염없이 답을 찾지만, 둘의 머릿속은 답을 찾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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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 회색 니트 목폴라 + 곤색코트에 루시드 핑크 코트(feat. 생김새는 눈꽃송이 코트) 입은 거 보고 싶었다. 저번에 헤어진 장면 떠오른다고 생각한 그 연장선에서 쓰게 된 글. 둘이 현대에서 만나고 헤어진다면 그 후엔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서(그 때 메모한 거 짤막히 적어보자면 둘 다 대학 졸업한 후. 윌은 대학원생이고 루시드는 취업준비생 그림이 그려짐. 윌이 먼저 무덤덤하게 헤어지자고 그래서 헤어지게 된 건데 (이 과정도 언제 써보고 싶음) 그러다가 위의 글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

 루시드가 어째서 병원에 오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자면 크게는 두 가지 생각이 드는데- 1. 어디 아파서 쓰러진 걸 누가 구해줘서 2. 목숨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늦게나마 발견 되어서. 후자면 헤어지자고 먼저 말한 죄책감에 (자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지) 윌이 많이 미안해할 것도 같음. 윌이 보호자로 연락된 건 루시드의 핸드폰엔 단축번호가 딱 하나 저장되어있는데 (헤어진 이후임에도) 그게 윌인 상황이 그려지고. 윌은 연락받고 오면서 별 생각이 다 들 테고. 전화 받았을 때 휴대폰 너머로 ‘유일하게 저장되어있는 단축번호라서 병원에서 연락드린 거’라고 했을 때, 헤어진 연인의 휴대폰에 아직도 자기가 단축번호로 남아있다는 이야기 듣고 어떤 생각이 들까 싶기도 하고.

 처음엔 -ㅆ다 가 아니라 -ㄴ다 로 전부 써놨던 글이었음. '널 생각했다.' 가 아닌 '널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다 현재형으로 써놨던 글이었는데 다시 손 보면서 몇 개 빼고 다 바꿈. 영화보는 것처럼 장면만 막 나열해놓은 글이었는데, 다시 손 보는 지금도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듯.

 <사랑한다 말해도>는 [답장] 앨범에 실린 곡 중에 타이틀 다음으로 <Contact>와 더불어서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콘서트장에서 들은 게 더욱 인상 깊었던 곡이기도 함. 노래랑 다른 점이라면 노래는 아직 헤어지지는 않은 상태고, 내가 노래 듣다가 떠오른 장면은 이미 헤어진 상태. 콘서트 후유증으로 계속 듣는데 갑자기 이 노래 첫 소절부터 병원에 있는 둘의 모습이 그려져서 쓰게 된 글. 꼭 들어보세요..


사랑한다 말해도 - 김동률

난 네 앞에 서 있어

너는 생각에 또 잠겨 있네

함께 있어 더 외로운 나

어쩌다 이렇게


난 네 앞에 서 있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채

떠오르면 또 부서지는

수없이 많은 말


나를 사랑한다 말해도

그 눈빛이 머무는 그곳은

난 헤아릴 수 없이 먼데


너를 사랑한다 말해도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두 눈이

말라버린 그 입술이


나를 사랑한다 말해도

금세 침묵으로 흩어지고

네 눈을 바라볼 수 없어


너를 사랑한다 말하던

그 뜨거웠던 마음이 그리워져

그 설렘이 그 떨림이 

어쩌면 이미 우린 알고 있나요

그래야만 하는가요


난 네 앞에 서 있어

너는 생각에 또 잠겨 있네

함께 있어 더 외로운 나

어쩌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