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초x석류 / 감석 / 쿠키런 킹덤 / 소설, 상플



[감초석류] 둘만의 속삭임 - 3

동료와 연인 사이, 흐려진 경계 위에서.

르비앙

posty.pe/evmi9e

(포스타입으로 읽을 분은 링크 클릭 후 읽어주시면 됩니다!)

 

[감초석류] 둘만의 속삭임 - 3

◆   오늘따라 영 집중이 안 됐다. 자칫 불량품을 만들 뻔하기도 했으니. 원래도 손재주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는데, 집중마저 하지 않으니 결과물들이 하나같이 신통치 않았다. 자칫 잘못해서

holic-zoe.postype.com

 

 





 오늘따라 영 집중이 안 됐다. 자칫 불량품을 만들 뻔하기도 했으니. 원래도 손재주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는데, 집중마저 하지 않으니 결과물들이 하나같이 신통치 않았다. 자칫 잘못해서 손을 다칠 뻔한 아찔한 순간도 몇 번 있었다.
 손재주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무섭게, 괜히 감초맛 쿠키가 떠올랐다. 지금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도 섬세하게 만들었을 손재주가. 공방에서 같은 걸 만들어도 늘 감초맛 쿠키가 만든 것의 평이 좋곤 했었다.
 갑작스럽게 생각의 방향이 감초맛 쿠키에게로 튀자 석류맛 쿠키가 고개를 돌려 불쑥 이는 생각들을 털어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집중을 하려는데, 저 멀리서 독버섯맛 쿠키가 쪼르르 달려오고 있었다. 손에 든 공구를 잠시 내려놓은 석류맛 쿠키가 독버섯맛 쿠키에게 인사했다. 독버섯맛 쿠키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석류맛 쿠키 옆에 멈춰선 독버섯맛 쿠키가 웅얼거리며 말했다.
 “감초맛 쿠키가 이제 안 놀아줘.”
 시무룩한 표정의 독버섯맛 쿠키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까진 잘 놀아줬는데….”
 독버섯맛 쿠키에게도 평상시와 다르게 대하는 모양이었다. 늘 툴툴거리면서도 독버섯맛 쿠키는 잘 챙겨줬었는데.
 “어제 준 버섯이 맛이 없었을까? 새로운 버섯을 찾았다니까 같이 좋아해줬는데.”
 석류맛 쿠키가 독버섯맛 쿠키 옆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으며 물었다.
 “버섯을 줬다구요?”
 “응…. 숲속에서 찾은 버섯, 하나뿐이라 제일 먼저 먹어보라고 줬어. 다른 버섯은 아직 남아 있는데, 석류맛 쿠키도 줄까?”
 독버섯맛 쿠키의 말을 잠시 곱씹던 석류맛 쿠키가 무언가 짚이는 듯 또 물었다.
 “그 버섯, 어떻게 생겼던가요?”


 
 감초맛 쿠키가 하루 아침에 변한 것이 독버섯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직까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추측이었다. 어떤 독버섯인지, 해독 방법은 존재하는지 찾기 위해 왕국에 한 권밖에 있지 않다는 도감을 물어물어 빌렸고, 정확한 확인을 위해 친하지 않았던 허브맛 쿠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해독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식물은 왕국 내에서 나지 않는 식물이라, 곰젤리 역무원에게 물건을 납품하며 따로 부탁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손에 넣게 된 작은 나무 함이 석류맛 쿠키의 집 안, 식탁 위에 고이 놓여있었다. 역무원에게 함을 받아들고 집까지 오는 동안, 혹시라도 쏟아질까봐 꼭 품고 가져온 함이었다. 함 안에는 해독에 도움이 될 풀을 말려서 곱게 갈아 만들었을 가루가 담겨있었다.
 감초맛 쿠키가 먹을 음식에 미리 타두면 그만일 테지만, 꼭 먹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을 골랐다. 일주일에 한 번, 전술 회의란 미명 하에 가졌던 티타임 시간을. 혹시나 까먹었을까 아침을 먹고 있는 감초맛 쿠키를 지나치며 일정을 상기시키고 온 터였다. 일부러 고개도 돌리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던진 말이었다.
 “잊지 않았겠죠? 오후 3시. 차를 마시기 좋은 시간이죠.”
 “설마 그걸 잊었을까봐? 날 뭘로 보고. 그건 기억하고 있다고.”
 감초맛 쿠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류맛 쿠키는 쌩한 걸음을 옮겼었다.

 찻주전자가 하얀 김을 내뱉고 있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석류맛 쿠키가 김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건… 수습이었다. 일단 지금은 그러했다. 동료가 치고, 동료가 당한 사고를 수습하려는 중이었다. 평생 저러고 있는 걸 놔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불쾌한 행동과 거슬리는 말투를 누군가는 되돌려 놔야 하기에 나선 것뿐이었다.
 처음엔 감정에 휘말려 괜한 일에 나서는 걸까 생각도 했었다. 사랑이라기엔 설익은 감정에 휘말려 원래 같았으면 느끼지 않았을 감정을 느끼고,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는 건 아닐지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잠시, 거기까지 갈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제정신이 든 후 감초맛 쿠키가 용서를 구하며 납작 업드릴 모습이 기대가 되는 것도 있었으니까.

 찻주전자와 두 개의 찻잔이 식탁 위에 나란히 놓여있었다. 이제 감초맛 쿠키가 올 시간이었다. 분침이 정각을 가리키기가 무섭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에 앉아있던 석류맛 쿠키가 몸을 일으켜 문을 열어주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던 감초맛 쿠키의 시선이 잠시 바닥에 떨어져있는 인형을 향했다. 언젠가 석류맛 쿠키에게 선물로 주었던 인형이었다.
 “뭐하러 아직도 안 버리고 있는 거지? 나 같으면 진작 버렸겠다.”
 “안 그래도 버리려고 했답니다. 요즘 좀 바빠서 그만.”
 “좋아하지도 않는 쿠키가 주는 선물 받고, 좋아하는 척 하느라 아주 힘들었겠어.”
 “갈대 같은 마음으로 상대를 좋아했던 누구만 할까요. 하루아침에 바뀔 마음이라니. 우습지 않나요? 적어도 전 한 입으로 두 말은 안 했답니다.”
 “나도 너처럼 좋아하는 척을 했던 걸지도 모르지.”
 “…….”
 잠깐의 신경전이 끝나고, 각자의 자리에 둘이 앉았다. 석류맛 쿠키가 따른 차의 색을 잠자코 보면 감초맛 쿠키가 한 마디 얹었다.
 “처음 보는 차인데.”
 “이 왕국 내에선 구할 수 없는 귀한 찻잎이죠.”
 ”…너 이런 향 별로 안 좋아하잖아. 안 그래?“
 ”마음이 변덕스러운 쿠키도 있는데, 입맛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 있나요?”
 석류맛 쿠키가 찻잔을 기울여 가볍게 입술을 축였다. 감초맛 쿠키도 천천히 찻잔을 입가에 가져다댔지만 이내 곧 찻잔을 내려놓았다.
 “별로네. 향도 맛도 뛰어난지 모르겠어.”
 의자에 등을 기댄 감초맛 쿠키가 찻잔을 감싸고 있는 석류맛 쿠키의 손에 시선이 멈췄다. 붉은 팔찌가 손목에 감겨있었다.
 “나 같으면 자존심 상해서 그 팔찌 버렸을 텐데.”
 “팔찌요? 아, 끼고 있었는 줄도 몰랐답니다.”
 이제야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석류맛 쿠키가 손목을 들어올렸다.
 “어제 껴안은 것도 그렇고-”
 “오해가 있나본데 어제 그랬던 건 확인할 게 있어서였어요. 사사로운 감정에서 비롯된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오늘 이 시간만큼은 생산적인 대화를 했으면 해서. 어제처럼 그런 거 말고.”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석류맛 쿠키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전술 회의보단 티타임의 성격이 강했던 주기적인 만남이었기에, 오늘과 같이 전술 회의라는 표현에 충실한 만남은 매우 오랜만이었다. 감초맛 쿠키의 말투와 행동이 어김없이 거슬렸지만, 냉철해진 성격은 평소보다 계획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동료로서는 참으로 괜찮은 상태였다.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면 오히려 이런 상태를 반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석류맛 쿠키는 생각했다.

 마시지 않을 것처럼 굴던 감초맛 쿠키도 습관적으로 찻잔에 손을 대더니 회의가 끝날 즈음에는 찻잔과 찻주전자가 깨끗하게 비었다. 중간중간 감초맛 쿠키가 마신 양을 가늠하는 석류맛 쿠키의 매서운 눈빛을 감초맛 쿠키는 눈치채지 못 했다.
찻주전자가 비었음을 확인한 감초맛 쿠키가 찻주전자의 뚜껑을 닫았다. 여러 서류들을 한데 모으며 석류맛 쿠키가 말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죠. 자세한 사항은 정해지는 대로 전달하겠어요.”

 

 

 


 잠을 깨우는 창밖의 새들의 지저귐이 시끄러웠다. 왕국에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불에 파묻혀있던 감초맛 쿠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제 석류맛 쿠키 집에서 돌아온 후 이상하게 머리가 무거워서 낮잠을 잔다고 누웠는데, 그새 아침이 밝은 모양이었다. 대체 얼마나 누워있던 건지. 다행인 점이라면, 오랫동안 잠을 자서 그런지 몸이 개운했다.
 “요즘엔 자고 일어나서 왜 이렇게 기분이 제멋대로지?”
 묘하게 뒷골이 싸한 기분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근에 있었던 일을 곱씹어보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며칠간 석류맛 쿠키에게 한 말과 행동들이 우수수 떠올랐다. 제정신이었던 건지 과거의 자신에게 묻고 싶었다. 미쳤다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주워 담을 수도 없고, 되돌리기엔 늦은 순간들이 뇌리를 치고 지나갔다. 할 말 안 할 말도 안 가리고, 하지 말아야 했을, 제정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말들만 골라서 했던 것들이 기억났다.
 “이제 어떡하냐…?”
 석류맛 쿠키의 얼굴은 무슨 수로 봐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일단 가서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해명을 하면 좀 나아지려나? 서둘러 이불을 박차고 뛰쳐나오려는데, 감초맛 쿠키의 시선이 탁상시계에 멈췄다. 늦잠을 제대로 잔 모양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지각을 면치 못할 시간이었다. 마음이 급한 감초맛 쿠키가 튀어 오르듯 몸을 일으켰다.



 잠을 자는 건지 마는 건지. 새벽 내내 잠을 설치고 뒤척이던 석류맛 쿠키는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내내 감초맛 쿠키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낮에 마신 해독 차의 약효가 제대로 들었다면 지금쯤이면 슬슬 정신을 차렸을 텐데. 정신을 차린 감초맛 쿠키가 찾아왔을 때, 무슨 표정을 하고 맞아줄까 잠깐 고민도 했었다. 일단 이렇게 깨어있으니 감초맛 쿠키가 헛걸음을 하게 되진 않을 테니까. 물론 사과를 받자마자 바로 용서를 할 마음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아침 햇살이 마루로 스며들 정도로 날이 밝아도 기대하던 누군가의 방문 같은 건 없었다. 창밖으로 아침을 맞은 왕국 주민들이 슬슬 집 밖으로 나오며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아직 약효가 나타나지 않은 건 아닐지. 늦잠을 자는 건 아닐지. 별별 생각이 함께 뒤엉켰다.
 머리가 복잡해서 침대 머리맡의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공기가 집안으로 훅 들어왔다. 저 멀리 삼삼오오 모인 쿠키들이 아침을 맞아 부산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아직 늦잠을 자느라 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감초맛 쿠키가 보란 듯이 섞여 있었다. 옆에는 독버섯맛 쿠키도 함께였다. 원래처럼 말도 잘 들어주고 잘 놀아주는 모양인지 독버섯맛 쿠키의 표정이 밝았다.
 해독 약이 효과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효과가 나타난다면 제일 먼저 이곳에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여태 오지 않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서슴없이 말하고, 서늘하게 대했던 건 중독의 문제가 아니었던 걸까.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애써 떼어내며 대답을 피한 것에 대한 그대로의 반응이었던 걸까. 고백을 거절했던 모양새와 다를 바 없던 놔달라던 부탁에 결국엔 이렇게 그날로써 끝나버린 관계가 되어버리는 건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석류맛 쿠키가 다시 신경질적으로 커튼을 쳤다. 그럼에도 틈새를 비집고 기어코 바닥으로 튀어나오는 볕이 거슬렸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두통에 잡아먹히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너무나도 아팠다.



 “나 지금 바쁘다구. 빨리 가봐야 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던 감초맛 쿠키가 독버섯맛 쿠키를 향해 말했다. 독버섯맛 쿠키는 감초맛 쿠키에게 바짝 붙은 채로 따라오고 있었다.
 “감초맛 쿠키가 원래대로 돌아와서 좋아.”
 “원래대로?”
 “어제까지만 해도 나랑 안 놀아주고…. 석류맛 쿠키한테도 못되게 굴었잖아. 나빴어.”
 “그, 그건!”
 “그 버섯이 그럴 줄은 몰랐어어….”
 독버섯맛 쿠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독버섯맛 쿠키의 말에 무엇인가 퍼뜩 떠오른 듯 감초맛 쿠키가 소리쳤다.
 “설마 그 버섯? 너, 너 나한테 뭘 먹인 거야!”
 애초에 선물로 받은 버섯을 먹을 생각 같은 건 없었었다. 하지만 당시에 얼이 빠질 때로 빠진 상태일 때, 손에 집히는 대로 먹다가 버섯을 씹었었다. 하필 음식 사이에 껴놓은 걸 발견을 못 할 줄이야. 반절이나 먹은 후에 깨닫고 뱉는다고 뱉었는데, 이미 어느 정도가 목 뒤로 넘어간 뒤였다. 그래도 특별히 아픈 곳은 없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그런 부작용이 있었다니. 그 영향으로 아침마다 기분이 그 모양이었던 걸까.
 “석류맛 쿠키가 약을 알아본댔어. 효과가 있었나봐.”
 헤, 하고 웃는 독버섯맛 쿠키를 향해 감초맛 쿠키가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말했다.
 “약은 또 뭐야. 나 그런 거 먹은 적 없-” 석류맛 쿠키의 집에서 먹었던 정체 모를 차가 떠올랐다. 그저 이름 모를 잎차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차를 마실 때마다 빤히 쳐다보던 건 단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석류맛 쿠키는 처음부터 이 상태를 알고 있던 걸까. 하지 말아야 될 이야기까지 너무 많이 해버렸는데.
 “감초맛 쿠키! 출발해야 합니다.”
 저 멀리서 에스프레소맛 쿠키가 채근했다. 곧 탐사를 위한 열기구가 출발할 시간이었다. 이착륙장을 향해 뜀박질을 하면서도 감초맛 쿠키의 고개는 자꾸 뒤를 향했다.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주는 독버섯맛 쿠키 뒤로, 멀리 석류맛 쿠키의 집이 보였다. 떠나기 전에 석류맛 쿠키의 집에 들리지 못하는 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누워있어서 그런지 손끝에 힘이 들지 않았다. 낮동안 자다 깨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온몸이 아팠다. 
어제 밤에 치성을 드릴 때 정성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기도를 하면서 잡념이 좀 섞였던 게 문제였던 걸까. 그래서 몸이 영 안 좋은 걸까. 계시를 받기 위해 치성을 드리면서 딴 생각을 하다니. 무녀로서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몇 끼 챙기지 않는 것쯤이야 익숙했다. 연일 기도를 드린답시고 며칠이고 밥을 거르는 일이야 석류 마을에서 지낼 적 자주 있던 일이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의미 없는 짓들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고 의심 없이 따른 적이 있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하루를 굶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불도 켜지 않은 방 안은 온통 어두컴컴했다. 어느덧 밤이 된 모양이었다. 이제 슬슬 몸을 일으키고 숲 속에 마련해놓은 제단에 나아가 치성도 드리러 가야 하는데, 계속 몸이 쳐졌다.
 만약 그 차가 효과가 있었더라면, 감초맛 쿠키가 사과를 할 생각이 있었다면… 이렇게 어두워지기 전에 한 번은 왔어야 맞는 건데. 열기구를 한 차례 타고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슬슬 나갈 채비를 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집 안에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딸깍였지만, 형광등은 잠시 불이 들어왔다가도 정신없이 깜빡이기를 반복했다. 하필 오늘 같은 날 조명까지 고장나다니, 되는 게 하나도 없는 하루였다.
 아예 스위치를 내린 석류맛 쿠키가 찬장을 향했다. 찬장을 더듬거리며 훑다 보니 손에 익숙한 물건들이 집혔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양초를 하나 꺼내 들었다. 함께 두었던 은쟁반도 함께 꺼내든 석류맛 쿠키가 성냥으로 초에 불을 붙였다. 타고 흐르는 촛농을 은쟁반 위에 떨어뜨리고 그 위에 초를 세워 고정하자 방 안 가득 고요한 불빛이 일렁였다.
 춤을 추듯 흔들리는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던 석류맛 쿠키의 눈이 식탁 구석에 엎어져 있는 인형에 멈췄다. 감초맛 쿠키가 만들다 말았던 인형이었다. 아마도 이젠 완성되지 못할 인형일지도 몰랐다. 입꼬리 한쪽이 살짝 올라간 채로 웃고 있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형을 집어 든 석류맛 쿠키가 몇 번인가 손 안에서 인형을 굴렸다. 보들보들한 촉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도 잠시, 석류맛 쿠키가 멀찍이 놓여있던 쓰레기통을 향해 인형을 던졌다. 허공에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인형이 퉁, 소리를 내며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졌다.
 숲길을 산책할 때 서로 떨어져서 걷다가도, 저 멀리에서 왕국 주민이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옆에 붙어서 걷던 것처럼. 감초맛 쿠키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나도 깊게 일상에 스며들어 있었다. 너무도 늦게 깨달아서, 치워야 할 흔적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다못해 집에 들인 가구마저도 함께 옮긴 것들이었다. 선물로 받은 것들이 집안 곳곳에 놓여있는 건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집안을 굴러다니는 감초맛 쿠키표 인형들을 모조리 주웠다. 그리곤 미련 없이 쓰레기통으로 쏟아버렸다. 선물 받은 것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울이나 방울을 보관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만들어준 파우치나 식탁 위의 꽃장식, 처음 만들어봤다며 불쑥 내밀었던 드림캐처까지. 참 사소한 선물들이 많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받은 건 정말로 많았다. 준 것은 딱히 기억나지 않았다. 주지 않았으니 기억할 게 없는 게 맞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주지 않고 받기만 한 관계였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만 생각했었다. 가졌던 감정도, 직접적인 표현도, 그렇게 쌓아 올린 관계도. 참으로 일방적이었다.
 마지막으로 감초맛 쿠키가 선물했던 팔찌를 벗으려는데, 팔찌가 쉽게 빠지지 않았다. 붉은 실이 촘촘히 엮여 중간중간에 작은 구슬들이 박힌 팔찌는 선물로 받은 이후로 빼놓지 않던 팔찌였다. 하지만 이제는 필요 없었다.
 주변을 살피다 가위를 발견한 석류맛 쿠키가 가윗날 사이로 팔찌를 끼웠다. 머뭇거림도 잠시, 서걱서걱 소리와 함께 가위 날이 붉은 실을 날카롭게 지나갔다. 한 번에 끊어지지 않던 팔찌는 가위 날에 몇 번 움직이자 저항 없이 팔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바닥에 툭 떨어진 팔찌를 주워든 석류맛 쿠키가 쓰레기통 위에서 손바닥을 펼쳤다. 팔찌가 다른 물건들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이제 나갈 시간이었다. 새로운 계시를 받기 위해 잡념은 거두고 정성스럽게 치성을 드릴 시간이었다. 다녀와서 비우기 위해 쓰레기통을 문 앞까지 밀어둔 석류맛 쿠키가 겉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한 번 다녀와도 지치는 탐사를 오늘은 두 번이나 다녀와야 했다. 왕국 땅에 발을 붙일 시간도 없이 또 떠나야 했던 탐사는 어두컴컴한 밤이 돼서야 끝났다. 온몸에 피로가 덕지덕지 붙은 기분이었다. 대충 낫을 어깨에 얹고 터덜터덜 걷는데, 독버섯맛 쿠키가 언제부터 따라온 건지 바로 옆에 있었다.
 “왜 그렇게 힘이 없냐. 버섯 먹어준다는 쿠키가 없었어?”
 감초맛 쿠키가 아니고서야 독버섯맛 쿠키가 권하는 버섯을 먹으려는 쿠키는 왕국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버섯맛 쿠키는 포기하지 않고 버섯을 들이밀곤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석류맛 쿠키가 아파.”
 “어디가?”
 슬픈 기색이 역력한 독버섯맛 쿠키의 말에 갑작스럽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오늘 한 끼도 안 먹었을 거야아. 아파서 일도 못 한댔어. 그래서어 내가 대신 했어.”
 속 안의 무언가가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탐사를 연달아 다녀오는 바람에 여태 못 가보다가 들은 소식이 아프다는 소식이라니.
 “…많이 아프대?”



 석류맛 쿠키의 집은 비어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문을 두들겨도 인기척이 없었다. 문 앞에 쭈그리고 앉은 감초맛 쿠키가 현관문에 고개를 박으며 중얼거렸다.
 “…아프다면서 어딜 간 거야.”
 지금이 딱 제단에 있을 시간이긴 한데, 그래도 아프다면서 거길 굳이 간 건지.
 딱딱한 바닥이 불편했다. 챙겨온 보퉁이를 다시 품에 껴안은 감초맛 쿠키가 석류맛 쿠키의 집을 마주 보고 있는 숲의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앉을 만한 곳을 찾던 감초맛 쿠키가 이끼가 살짝 핀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밤이라 그런지 슬슬 한기가 들어 몸이 덜덜 떨렸다. 이렇게 추운데 대체 언제 오려는 건지. 이럴 때 밖에 있으면 상태가 더 안 좋아지기만 할 텐데.
 가지고 온 보퉁이를 괜히 매만졌다. 어디가 아픈지 알 수가 없으니 의무실에서 약도 이것저것 되는대로 받아오고, 식사도 안 했다니 음식도 가져왔는데. 식은 음식을 전해주게 될까 걱정이 앞섰다.
 “열쇠 돌려주지 말 걸…. 아니지, 열고 들어가도 안 좋아했을 거야.”
 점점 잠이 쏟아지는 건지 눈꺼풀이 무거웠다. 차라리 석류맛 쿠키가 있을 제단을 찾아가야 하나 싶었지만,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길이 엇갈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치성을 드릴 때 방해받는 건 매우 싫어하는 터이니… 기다리는 게 제일 나아 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꾸벅꾸벅 졸던 감초맛 쿠키를 깨운 건 익숙한 걸음 소리였다. 잠이 깬 감초맛 쿠키 앞에 석류맛 쿠키의 모습이 보였다. 현관 앞에 멈춰선 석류맛 쿠키가 열쇠를 잡으려는 건지 한쪽 소매를 걷었다.
 석류맛 쿠키의 손목에 시선이 닿은 감초맛 쿠키의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늘상 손목을 감싸고 있던 붉은 팔찌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끼고 있었잖아.’
 단 하나뿐이라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며 전해준 팔찌였는데. 거추장스럽다며 안 낄 것처럼 대답하더니 선물로 받은 후로는 매번 끼고 다니던 팔찌였는데-
 나 같으면 자존심 상해서 그 팔찌 버렸을 텐데.
 석류맛 쿠키의 면전에 내뱉었던 말이 훅 떠올랐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감초맛 쿠키의 얼굴에 황망한 표정이 어렸다.

 

 

 

 

 

 

-

쓰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유를 꼽자면 (1) 쓰고 싶은 장면이 4편에 있어서 멀게만 느껴져서 (2) 분량이 좀 길어져서

~사랑은 타이밍~

『다시 떠나보내다』가 40페이지였는데 이것보다 분량은 더 많아질 거 같고 괜히 제본해서 소장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회지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더 글이 잘 써지려나. 그러려면 완성을 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