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초x석류 / 감석 / 쿠키런 킹덤 / 소설, 상플


[감초석류] 둘만의 속삭임 - 1

동료와 연인 사이, 흐려진 경계 위에서.



르비앙

 

holic-zoe.postype.com/post/9482796

(포스타입으로 읽을 분은 링크 클릭 후 읽어주시면 됩니다!)

 

[감초석류] 둘만의 속삭임 - 1

◆   필요에 의해서 시작한 위장이었다. 왕국 내에서 마음에 드는 위치에 있는 쿠키 하우스를 배정받기 위해서 시작한 위장. 고즈넉한 숲을 옆에 끼고 있는 쿠키 하우스가 마음에 들었던 석류맛

holic-zoe.postype.com

 




 필요에 의해서 시작한 위장이었다. 왕국 내에서 마음에 드는 위치에 있는 쿠키 하우스를 배정받기 위해서 시작한 위장. 고즈넉한 숲을 옆에 끼고 있는 쿠키 하우스가 마음에 들었던 석류맛 쿠키에게 먼저 떠보듯 제안을 한 것은 감초맛 쿠키였다. 가족이나 연인에게 쿠키 하우스를 우선적으로 배정하니, 그 혜택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석류맛 쿠키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감초맛 쿠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석류맛 쿠키가 제안을 받아들인 덕에, 숲과 제일 가까운 집은 석류맛 쿠키에게 돌아갔다. 감초맛 쿠키는 석류맛 쿠키의 집으로부터 한 블록 떨어진 곳에 배정되었다.
 연인이라고 발표한 만큼 그에 맞는 행동이 필요했다. 혹시 모를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같이 다니곤 했다. 함께 왕국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는 자리에도 늘 둘은 붙어 앉았고, 해가 떨어지고 집에 돌아갈 때도 늘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연인이라고 소문이 나니 불순하게 작당하려 모였다는 의심을 사지 않아도 됐다.
 훨씬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서 서로의 집에 자주 들락거리는 건 처음엔 분명 전략적인 일과였다. 하지만 어느덧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만큼 스며들어, 함께 저녁을 먹거나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가끔 책을 읽다 잠든 감초맛 쿠키를 깨워서 돌려보내지 않고, 담요를 덮어주는 것으로 함께 아침을 맞기도 하는 사이였다. 위장과 진심의 경계가 흐려진 것을 각자 어느정도 지각하고 있었지만, 관련해서 굳이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없었다.
이젠 동료라고 칭하기엔 꽤나 가깝고, 연인이라고 하기엔 어느정도 그럴듯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아침 식사를 함께 하러 가기 위해 서로의 아침 모닝콜이 되어주기도 하는 사이를 위장한 연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왕국 내에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가 인형을 만들면, 누군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창밖 풍경을 구경하는- 그렇게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한 공간에 있는 시간들이 점점 늘었다.

 

 


 오늘도 왕국의 일과가 끝나고 석류맛 쿠키의 집에 온 감초맛 쿠키의 손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무언가가 쥐여있었다. 감초맛 쿠키의 손재주는 꽤 좋았다. 무언가 작심하면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완성된 작품들은 종종 석류맛 쿠키에게 주는 선물이 되곤 했다. 그렇게 감초맛 쿠키의 손을 탄 선물들이 석류맛 쿠키의 집 곳곳에 배치되어있었다. 식탁 위의 센터피스나 카펫 위를 굴러다니는 작은 인형들, 석류맛 쿠키의 손목에 걸린 팔찌와 같은 것들도 모두 감초맛 쿠키의 작품이었다.
 독서를 하겠다며 들고 온 책들은 이미 감초맛 쿠키의 관심에 벗어난 듯 했다. 오히려 책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석류맛 쿠키였는데, 식탁 위에 층층이 놓인 책들의 제목을 구경하던 석류맛 쿠키의 시선이 어느 노트에 멈췄다.
 “못 보던 노트네요. 읽어봐도 될까요?”
 두꺼운 책더미 속에 끼여있던 노트를 꺼낸 석류맛 쿠키가 이곳저곳을 살폈다. 아무런 제목도, 저자도 쓰여 있지 않은 감색 노트는 손때가 가득 묻어 귀퉁이가 헐어있었다. 꽤나 자주 펼쳐본 모양이었다. 식탁에 앉아 만들기에 정신이 팔린 감초맛 쿠키를 향해 석류맛 쿠키가 노트를 흔들어 보였다. 퍼뜩 정신이 든 듯 고개를 든 감초맛 쿠키가 석류맛 쿠키가 손에 노트를 든 것을 발견하고는 아주 급하게 소리쳤다.
 “그건! 읽으면 안 돼.”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있길래 그러죠?”
 “일, 일기- 아니, 내 연습장이야. 낙서밖에 없어. 마법진 낙서, 마법서 필사… 뭐 그런 것들 있잖아!”
 헤헤, 웃으며 얼렁뚱땅 넘기려는 감초맛 쿠키의 표정을 석류맛 쿠키는 금방 읽어냈다.
 “근데 그게 뭐라고 이렇게 막아서는 거죠? 그러면 더 읽고 싶어지는 걸요?”
 난감했다. 예전에 쓰던 일기장이 책 사이에 딸려올 줄이야. 챙길 때 제대로 확인하고 챙길 걸. 하필 저게 석류맛 쿠키의 눈에 띄다니.
 “듣자 하니 제 험담을 늘어놓은 노트가 존재한다던데. 왕국에 소문이 파다하더라구요?”
 “누… 누가 그래?”
 “그러게요. 쓰고나서 얼마나 간수를 못 했으면 제 귀까지 그런 이야기가 들린 걸까요?”
 “요즘 왕국 내에 헛소문이 파다하잖아. 밤이 되면 물가에 귀신이 출몰한다든가, 케이크 들개에 물리면 무시무시한 병에 걸린다든가. 그런 거 아닐까?”
 대충 얼버무려서 수습하고 싶었지만, 석류맛 쿠키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게 될 것 같진 않았다.
 “저는 그 노트가 이 노트일 것 같다는 의심이 강하게 들어서요.”
 어쩜 저렇게 귀신같은지. 당장이라도 노트를 펼쳐서 속속들이 관련 부분들을 찾아낼 것만 같았다. 그 이후로 이어질 잔소리는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했다. 그대로 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확인해보면 알 수 있겠죠.”
 노트를 손에 든 채로 휙 몸을 돌린 석류맛 쿠키가 창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벌떡 몸을 일으킨 감초맛 쿠키가 서둘러 석류맛 쿠키를 쫓았다.
 “남의 일기를 막 보냐? 돌려줘.”
 “언제는 연습장이라더니. 순식간에 노트의 용도가 바뀐 건가요?”
 “달라니까?”
 석류맛 쿠키가 감초맛 쿠키의 반대쪽 허공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결코 돌려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태도였다.
 “줘.”
 감초맛 쿠키가 손을 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름 심각한 표정도 지어 보이면서. 하지만 석류맛 쿠키는 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 읽고 돌려줄게요.”
 하아, 한숨을 내쉬며 감초맛 쿠키가 고개를 숙이며 팔을 내렸다. 물론 다 계산을 하고 한 행동이었다. 석류맛 쿠키가 살짝 방심한 틈을 타서 낚아챌 셈이었으니까.
 감초맛 쿠키의 행동을 유심히 보던 석류맛 쿠키가 뻗었던 팔을 접어 노트로 입을 가렸다. 이기지 못할 걸 알고 순순히 물러서는 감초맛 쿠키의 모습은 이제 익숙했다.
 한 손으로 표지를 넘기려는 찰나, 감초맛 쿠키가 고개를 들고 노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반격에 석류맛 쿠키는 뒷걸음질 치며 재빨리 팔을 멀리 뻗었지만 뒤에 놓여있던 침대에 다리가 걸리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석류맛 쿠키의 팔을 향해 손을 뻗은 감초맛 쿠키 또한 무릎이 침대 모서리에 걸리며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쏟아졌다. 팔을 짚는다고 짚었는데, 상체가 풀썩 석류맛 쿠키의 위로 쓰러졌다. 포개진 경계를 따라 그대로 상대방의 체온이 전해졌다. 천천히 든 고개가 석류맛 쿠키의 얼굴과 매우 가까웠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뺏거나 뺏기지 않으려는 실랑이가 잠시 멎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감초맛 쿠키의 눈동자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팔꿈치로 몸을 겨우 받치고 있지만 살짝이라도 얼굴을 돌리면 귓가에 입술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였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는 건 석류맛 쿠키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아? 안 다쳤어?” 먼저 입을 연 건 감초맛 쿠키였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조심스럽게 살짝 고개를 들긴 했지만,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딴청을 피우듯 괜히 먼 곳을 바라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도 길었다.
 석류맛 쿠키는 대답 없이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놓았다. 대신, 감초맛 쿠키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천천히 팔로 감초맛 쿠키를 감싸 안았다. 손을 짚고 일어나려던 감초맛 쿠키의 몸이 도로 석류맛 쿠키의 몸 위로 포개어졌다.
 온몸으로 전해오는 감초맛 쿠키의 무게가 싫지 않았다. 석류맛 쿠키가 팔에 힘을 줘 감초맛 쿠키를 조금 더 자신 쪽으로 끌었다. 어쩔 줄 몰라하던 감초맛 쿠키가 어색하게 손을 옮겼다. 석류맛 쿠키의 손길에 화답하듯 팔꿈치로 지지하고 있던 힘을 살짝 풀어 손으로 석류맛 쿠키를 감쌌다.
심장이 맞닿는 곳이 평상시보다 높은 박자로 뛰고 있었다. 이렇게 가깝게, 둘 사이에 빈틈을 허락하지 않은 포옹은 처음이었다. 후끈 달아올랐을 얼굴의 열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눈을 감은 채 서로를 향해 파고드는 움직임은 조심스러웠고, 상대에게서 온몸으로 전해지는 감각이 간지러웠다.
 함께 하기로 한 저녁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났어도 둘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석류맛 쿠키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감초맛 쿠키가 석류맛 쿠키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해.”
 입에 담기만 해도 떨리는 단어였다. 가끔 마음으로만 떠올렸다 지우곤 했던 단어. 처음으로 상대에게 속삭이는 단어였다. 이 순간, 이 떨림의 유일한 이유. 늘 표현하고 싶었지만 한 켠에 접어 두었던, 이제야 표현하는 진심이기도 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
 석류맛 쿠키는 답이 없었다. 감싼 팔을 풀지 않은 채로 무언가 생각을 하느라 답이 늦어지는 걸까. 감초맛 쿠키는 재촉을 할 수 없었다. 다만 기다릴 뿐이었다. 한풀 꺾인 목소리로 감초맛 쿠키가 물었다.
 “…내가 싫어?”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
 석류맛 쿠키가 대답을 얼버무렸다. 
 “넌 아닌가 보네.”
 넌 날 사랑하지 않나 보네. 감초맛 쿠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감정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있기만 해도 좋고, 가까이 있자면 떨리는 이 감정이 혼자만의 것이라니 조금은 서글펐다. 시작은 연인으로 위장한 관계였다지만 점점 무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리 되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싫었으면 지금 이러고 있지도 않았어요.”
 “그러면?”
 “…꼭 말을 해야 아나요?”
 “네 입으로 듣고 싶어.”
 “아직은….”
 아직은 확실히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이었다. 아주 약간 걱정을 하고, 때로는 약오르기도 하고, 하는 짓에 따라선 밉기도 한 이 감정은 너무도 복잡했다. 가끔 눈에 보이지 않을 때 궁금할 때도 있지만, 사랑이라기엔 아직은 부족하고 설익은 감정 같았다. 호감과 관심, 그 어디쯤에 있을 감정이었다. 좋아하는 건 맞지만 사랑하는 것은 아닌 그 어딘가에. 끌리고 있는 것도 맞았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 사랑이라고 불릴만한 감정은 아닌 것 같았다.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이 진정 사랑이라고 해도 사랑한다는 말은 참으로 간지러운 말이었다. 내뱉기에 쉽지 않아서, 많은 용기가 필요한 단어였다. 감정이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다만 그 말을 하는 건 상상만 해도 왠지 수줍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그 말을 하는 스스로가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민망함과 어색함, 쑥스러움을 다 견뎌내야만 할 수 있는 말일 테니 입에 담기엔 어려운 단어였다. 그래서, 석류맛 쿠키는 말을 돌렸다.
 “이제 놔줘요. 노트 돌려줄게요. 나가 봐야 해요.”
 석류맛 쿠키가 껴안았던 팔을 풀며 채근했다.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감초맛 쿠키를 향해 석류맛 쿠키가 한 번 더 말했다.
 “치성 드리러 가야 해요. 이제 그만… 놔줘요, 무거워요.”
 푹 고개를 숙였던 감초맛 쿠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손을 짚어 몸을 일으킨 석류맛 쿠키가 머리를 정리하며 침대를 벗어났다. 거실을 가로질러 겉옷을 챙긴 석류맛 쿠키가 한 마디를 남기곤 서둘러 집밖으로 나섰다.
 “먼저 나가볼게요. 나갈 때 불은 꺼주시구요.”
 석류맛 쿠키가 나간 자리만 멀뚱히 보고 있던 감초맛 쿠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고백이 너무 갑작스러웠던 걸까. 시원치 않았던 석류맛 쿠키의 대답이 자꾸 걸렸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 걸….
 노트를 쥐고 꾸깃한 이부자리를 대강 정리한 감초맛 쿠키가 느릿느릿 침대 발치에 있는 식탁을 향했다. 아직 만들다 만 인형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넌… 내가 다음에 와서 완성해줄게.”
 감초맛 쿠키가 감색 노트와 가지고 왔던 책들을 한데 모았다. 슬슬 허기가 느껴졌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꽤 오랜 시간이 지나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소원 나무에 들려서 음식을 챙겨갈 요량으로 품에 한가득 책을 든 감초맛 쿠키가 팔꿈치로 스위치를 눌렀다. 석류맛 쿠키의 방안을 비추던 조명이 꺼졌다. 집안을 휘 둘러본 감초맛 쿠키가 문밖으로 향했다.
 찰칵, 짧은 금속음과 함께 문이 잠겼다.

 

 

 

 

-

제목을 짓는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습니다. 지금이 세 번째 제목인데 그나마 괜찮은 거 같아서 제목으로 낙점했습니다. 일전에 올라온 『조금은 오래도록』과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조금은 오래도록』을 쓰다가 갑자기 이번 이야기에 꽂혀서 이걸 쓰게 되었네요. 처음엔 2편으로 계획 중이었는데 4편으로 쪼갰습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참 많은데, 어느 세월에 다 쓸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