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x석류 / 감석 / 쿠키런 킹덤 / 소설, 상플


[감초석류] 둘만의 속삭임 - 2

동료와 연인 사이, 흐려진 경계 위에서.

르비앙

 

posty.pe/5whudg

(포스타입으로 읽을 분은 링크 클릭 후 읽어주시면 됩니다!)

 

[감초석류] 둘만의 속삭임 - 2

◆  소원 나무 앞 벤치에 앉아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감초맛 쿠키는 속으로 내내 후회 중이었다. 말하지 말 걸, 그냥 입 닫고 있었으면 좋았을 걸. 괜히 입을 열어서….  와글와글한 군중에

holic-zoe.postype.com

 

 


 

 소원 나무 앞 벤치에 앉아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감초맛 쿠키는 속으로 내내 후회 중이었다. 말하지 말 걸, 그냥 입 닫고 있었으면 좋았을 걸. 괜히 입을 열어서….

 와글와글한 군중에 휩쓸리던 와중에, 혹은 좁은 길목을 통과하기 위해서 길을 터주다가 스치듯 살짝 안아본 게 다였다. 오늘처럼 제대로 안아본 건 처음이었다. 아주 가깝게, 그것도 오래도록. 몸과 몸이 맞닿던 시간동안 몸에 피어났던 감각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 순간의 좋았던 감정이 다시 일어 잠시 입꼬리가 올라가더라도, 입을 잘못 놀려 끝내 어정쩡하게 끝나버린 것만 생각하면 다시금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잘못인 것 같았다. 아니, 잘못한 게 분명했다. 너무 급작스럽게 굴었으니 그런 반응이 돌아오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한심해서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이마에 묵직한 통증이 감돌았다.

 “감초맛 쿠키이이!”

 저 멀리서 독버섯맛 쿠키가 팔을 뻗은 채로 다가오고 있었다. 품 한가득 담긴 버섯들이 꽤나 알록달록했다. 고개를 처박고 있던 감초맛 쿠키가 번뜩 몸을 일으키며 독버섯맛 쿠키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저녁 먹으려구우?”

 “응. 넌 먹었냐?”

 “먹었지이. 오늘 숲에서 새 버섯을 찾았어. 이 버섯, 먹을래애?”

 석류맛 쿠키 집 옆의 숲에서 찾아낸 거라며, 독버섯맛 쿠키가 유독 색이 고운 버섯을 들이밀고는 물었다.

 

 

 

 

 평상시보다 일찍 눈이 뜨였다.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는데 문득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마음을 내보였던 순간임과 동시에 처음으로 고백을 들었던 순간. 감초맛 쿠키의 감정은 대강 짐작하고 있었지만, 직접 말로써 드러낸 것은 처음이었다. 그토록 가까웠던 것도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따뜻한 품을 얼마나 오래 안고 있었는지. 채 정의 내리지 못한 감정에 결국 밀어내는 결말이었지만, 분명 나쁘지 않았으니까.

 슬슬 바깥이 시끄러웠다. 왕국에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제 슬슬 나갈 준비를 할 시간임을 확인한 석류맛 쿠키가 이불을 한쪽으로 걷어내고 침대 밖으로 몸을 일으켰다.



 잘 정리된 이불을 차분히 매만지며 벽시계를 확인했다. 감초맛 쿠키가 올 시간이 지날 대로 지났는데도 문밖은 고요했다. 이때쯤이면 함께 아침을 먹으러 갈 시간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혹시 늦잠을 자는가 싶어서 들른 감초맛 쿠키의 집은 비어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가볍게 문을 두들겨보아도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석류맛 쿠키가 한창 아침 식사가 진행 중인 왕국의 광장을 향했다.

 이미 많은 쿠키들이 나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앉을만한 빈자리를 찾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저 멀리 빈자리에 둘러싸여 태연하게 밥을 먹고 있는 감초맛 쿠키가. 감초맛 쿠키를 향해 석류맛 쿠키가 걸음을 옮겼다.

 석류맛 쿠키가 감초맛 쿠키의 건너편 빈 의자를 잡아당겼다. 의자가 만드는 소음에 감초맛 쿠키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아침에 안 왔더군요. 제가 일찍부터 깨어 있었으니, 벨 소리를 못 들었을 리는 없-”

 “거기 자리 있어.”

 “네?”

 “거기 네가 앉을 자리 아니라고.”

 조금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석류맛 쿠키가 예상치 못한 감초맛 쿠키의 말투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든 말든, 감초맛 쿠키가 말을 이었다.

 “같이 탐사 다녀올 멤버들이랑 먹기로 되어있다고.”

 “…아침에 함께 오기로 한 약속 잊었나요?”

 “아니.”

 한껏 밥맛이 떨어졌다는 티를 확 드러내며 감초맛 쿠키가 짧게 답했다. 석류맛 쿠키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왜-”

 “좋아하지도 않는 쿠키 비위 맞추는 거 힘들 거 아냐. 안 그래?”

 덜컥 석류맛 쿠키의 말을 자른 감초맛 쿠키가 손에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뭐라구요?”

 “좋지도 않은 내가 잠을 깨우고,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할 거 같아서 그냥 혼자 왔어.”

 “…무슨-”

 “비켜줘. 동료들 앉아야 하니까.”

 저 멀리에서 탐사를 함께 갈 쿠키들이 음식을 담은 그릇을 든 채로 다가오고 있었다. 굳이 이런 언쟁을, 이런 모습을 다른 쿠키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감초맛 쿠키에게 언짢은 기색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감초맛 쿠키를 한 번 내려다본 석류맛 쿠키가 탁 의자를 밀어내며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석류맛 쿠키가 가든 말든, 감초맛 쿠키는 자신의 동료들을 향해 이곳으로 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한쪽 어깨에 낫을 비스듬히 걸친 감초맛 쿠키가 4명의 쿠키들과 함께 열기구 이착륙장을 향해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조금씩 속도를 내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불쑥 누군가가 감초맛 쿠키의 소매를 붙잡아 끌었다.

 소매를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석류맛 쿠키였다. 어디서부터 따라온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꽤 급하게 따라붙었던 건지 숨소리가 평상시보다 많이 거칠었다. 보폭이 넓은 쿠키들을 따라잡으려니, 꽤나 종종걸음을 쳤을 터였다. 감초맛 쿠키는 앞서가는 동료들에게 먼저 가있으라며 손짓했다.

 석류맛 쿠키가 채 호흡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화난 건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아침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래서 묻고 싶었고, 그 때문에 숨이 차도록 걸음을 옮겨 감초맛 쿠키를 붙잡아 돌려세웠다.

 “아니. 화난 거 없는데?”

 “그럼 뭐하는 거죠?”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꼭 다른 쿠키 같았다. 평상시랑 매우 다른 태도와 말투, 그리고 눈빛까지. 분위기조차 무언가 미세하게 변한 게 느껴졌다. 어디 하나 원래 알던 감초맛 쿠키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른 쿠키 같아요. 많이 달라졌군요.”

 “뭐가 달라졌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난 원래 나야. 똑같고, 변한 게 없다고. 네가 날 잘못 알고 있던 걸지도 모르지.”

 감초맛 쿠키의 대답에 석류맛 쿠키가 짤막하게 헛웃음을 지었다.

 “뭐, 자고 일어나서 생각이란 걸 했거든. 깨달은 바가 있었지. 그것도 내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뭘 깨달았다는 거죠?”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봤는데… 괜히, 나만. 나만 매달린 거 같더라고.”

 “…….”

 “피차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제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닌가 해서. 어차피 위장이었잖아. 위장치곤 내가 과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그대로였다. 자고 일어나 생각해보니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바쁘니까 그만 좀 놔줬으면 좋겠는데.”

 감초맛 쿠키가 자신의 소매를 한 번 흘끗 보고는 말했다. 석류맛 쿠키가 천천히 쥐고 있던 소매를 놓았다.

 놔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휑하니 몸을 돌린 감초맛 쿠키가 열기구 이착륙장을 향해 휘적휘적 걸었다. 빈손을 차분히 내려다본 석류맛 쿠키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있는가 싶더니, 몸을 돌려 왕국 광장으로 도로 천천히 걸음했다.

 

 

 

 

 일을 하긴 하는데,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물뿌리개가 성의 없이 허공에 호를 그렸다. 왜 그러는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제 밤에 먼저 나가버린 거 때문인가 싶으면서도, 화가 난 것도 아니라는 답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자세히 묻고 싶었다. 대체 왜 그러냐고, 무슨 일 때문이냐고. 저 멀리 이착륙장에 놓인 타이머를 틈날 때마다 살폈다. 열기구 탐사가 끝나고 돌아올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화났다기엔 날카로운 말투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섭섭한 티가 나는 말투도 아니었다. 삐졌다고 하기엔 부루퉁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저 차갑고 서늘했을 뿐이었다.

 기억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진 않은데. 흑마법 부작용 중에 저런 증상도 있는 걸까. 하루 아침에 감정이 삭제된 것 마냥 성격이 바뀌는 괴상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는데. 그렇다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감초맛 쿠키가 흑마법을 처음 다루는 것도 아닌데. 왕국 내에서 독보적인 흑마법 숙련자와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늘 일을 허술하게 해서 타박한 적은 있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실력을 의심해서가 아닌 꼼꼼치 못한 일처리에 대한 지적이었다. 실력만 놓고 보자면, 부작용이 발생했을 가능성은 그닥 높아보이지 않았다.

 타이머가 초 단위로 남은 걸 확인하자마자, 들고 있던 물뿌리개를 던져놓고 이착륙장으로 향했다. 어차피 할당받은 일은 다 했으니 문제될 일은 없을 터였다.

 차례대로 다섯 쿠키가 열기구에서 내렸다. 탐사를 하며 챙겨온 전리품들을 왕국 관리자에게 넘기고는 왕국 땅을 밟았다. 멀찍이 서있던 석류맛 쿠키가 감초맛 쿠키의 이름을 불렀다. 걸음을 멈춰선 감초맛 쿠키가 석류맛 쿠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감초맛 쿠키에게 걸어온 석류맛 쿠키가 담담하게 말했다.

 “내 집에 놓고 간 거, 가지러 와요.”

 “내가? 뭘 놓고 왔는데?”

 “당신 펜이요. 어제 놓고 갔던데.”

 “아, 그거. 지금 가져다주면 될 걸 굳이 오라고 하는 이유가 뭐지? 내가 좀 바빠서.”

 바빠서, 라는 표현에 힘을 주어 표현한 감초맛 쿠키를 향해 석류맛 쿠키가 단호하게 말했다.

 “길게 말하지 않겠어요. 돌려받고 싶으면, 오는 게 좋을 거예요.”

 감초맛 쿠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석류맛 쿠키가 돌아섰다. 석류맛 쿠키의 붉은 신이 천천히 계단을 밟은 후 풀밭 위를 내딛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면서 석류맛 쿠키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왕국에도 천천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모두 할당된 일을 끝낸 쿠키들은 소원 나무에서 음식을 받아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석류맛 쿠키도 오는 길에 음식 꾸러미를 받아왔지만, 꾸러미는 받아온 그대로 식탁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입맛이 영 없었다. 원래도 밥을 제때 챙겨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때쯤이면 늘 감초맛 쿠키가 와서 식탁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음식에 입을 대긴 했었다. 오늘은 식탁 의자에 앉아 꾸러미를 말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겉옷을 벗으려는데 퉁퉁, 나무로 된 현관문이 울렸다. 다시 옷을 여미고 누구냐고 묻자, 상대방이 짧게 답했다.

 “나야.”

 감초맛 쿠키의 목소리였다.

 “열고 들어와요.”

 이 집의 열쇠를 가지고 있으니, 언제나처럼 열고 들어오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열쇠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또다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석류맛 쿠키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다가갔다. 잠금 장치를 조작하고 문고리를 잡아 문을 밀어내자, 감초맛 쿠키가 앞에 서있었다.

 “열쇠, 제가 주지 않았던가요?”

 어제까지 잘만 열고 다니던 문을 왜 열어달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필요 없을 거 같아서. 반납하려고.”

 감초맛 쿠키가 손가락에 고리째 반지처럼 끼워둔 열쇠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펜 줘.”

 “일단 들어와서 얘기하죠.”

 감초맛 쿠키가 집안에 들어선 후 손가락에 끼워뒀던 열쇠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늘 감초맛 쿠키가 만든 수제 인형 장식도 함께 걸려있던 열쇠였는데, 그것도 뺀 모양이었다.

 현관문을 닫고 식탁 앞에서 감초맛 쿠키를 마주한 석류맛 쿠키가 품에 넣어두었던 펜을 꺼내며 말했다.

 “여기, 당신이 놓고 간 펜이요.”

 천천히 펜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어제 치성을 드리고 돌아온 후 발견한 펜이었다. 늘 감초맛 쿠키가 붙잡고 무언가를 써내려가곤 했던, 뚜껑부터 몸체까지 온통 짙은 검정의 펜이었다. 식탁 밑바닥에 떨어져 있던 걸 발견한 후, 다음 날 저녁 식사 때 칠칠치 못하다며 한 마디 덧붙여주면서 돌려주려고 했던 펜이었는데.

 펜을 잡으려 살짝 허리를 숙여 손을 뻗는 감초맛 쿠키를 석류맛 쿠키가 유심히 살폈다. 펜을 쥔 후 이리저리 살피며 자신의 것임을 확인한 감초맛 쿠키가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석류맛 쿠키가 감초맛 쿠키의 허리 부분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게 뭔가 싶어서 감초맛 쿠키가 잠시 멈춰 섰다.

 석류맛 쿠키가 아무런 표정도 띠우지 않은 채로 감초맛 쿠키를 자신 쪽으로 끌어안았다. 감초맛 쿠키가 저항 없이 석류맛 쿠키 쪽으로 끌려왔다. 감초맛 쿠키의 품에 석류맛 쿠키가 가만히 귀를 가져다 댔다. 잠깐의 정적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뗀 석류맛 쿠키가 감초맛 쿠키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감초맛 쿠키는 어느 때보다도 안정적인 박동 수를 유지 중이었고, 가까이 서서 눈을 마주해도 움찔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침에 말했던 대로 화가 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무언가 섭섭한 기색도 없었다. 그저, 좀 달라진 것 같았다. 눈빛이 사늘해지고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마치 하루아침에 다른 쿠키가 된 것처럼. 감정을 죄다 덜어내고 겉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한 꺼풀 가면을 덧씌운 것도 같았다. 눈빛이 쉬이 읽히지가 않았다. 상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다고 자부해왔는데, 그 통찰력이 먹히지 않는 상대가 다름 아닌 감초맛 쿠키라니.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매우 건조한 반응이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뭐하는 거냐고 한 발짝 물러나거나, 안 놀란 척하면서 얼굴에 다 쓰여 있거나, 눈을 피하고 괜히 말을 더듬으면서 실없는 소리를 덧붙였을 텐데.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석류맛 쿠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확인할 게 있어서요.”

 별일 아니었다는 듯 석류맛 쿠키가 답했다.

 “펜 하나 가져가는데, 이런 것까지 필요해?”

 “약속을 어긴 것도 모자라서 사과도 없고, 뻔뻔하기까지. 머리에 문제가 생겼나 해서요.”

 ”이젠 내 상태를 의심하는 거야? 내가 아주 못마땅한 모양이네.“

 “한 번 더 말해보시죠.”

 “뭐를. 의심하냐는 말을?”

 “어제 여기서 저한테 했던 말.”

 석류맛 쿠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침대를 가리켰다. 감초맛 쿠키는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

 “설마 기억 못 하는 건 아니겠죠?”

 “그럴리가. 기억 잘 하고 말고.”

 “그럼 해보시죠.”

 이 분위기에서 오가기에 별로 적절하지 않은 말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방금 전 반응을 확인했던 것처럼 지금의 상태를. 어쩌면… 당장의 마음을.

 “…별로 하고 싶지 않다면?”

 “왜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수는 없잖아.”

 감초맛 쿠키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뭐라구요?”

 감초맛 쿠키가 이 집에 발을 들인 이후로 내뱉는 모든 말은 모두 태연했고, 흔들림이 없었으며 감정의 기복이 일체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루 아침에 저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걸까.

 하아, 짧게 한숨을 내쉰 감초맛 쿠키가 이런 것까지 괜히 설명해줘야겠냐는 말투로 덧붙였다.

 “더 이상은 그런 감정 같은 거 남아있지 않으니까.”

 “…….”

 “사랑하지 않으니까. 답이 됐어?”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직접적인 대답을 들을 줄은 예상 못 했는데.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다소 냉랭한 말투의 감초맛 쿠키는 매우 낯설었다. 여태 알고 지내던 감초맛 쿠키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 대답이 없는 석류맛 쿠키를 향해 감초맛 쿠키가 말을 이었다.

 “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잖아. 그래서 말 못 했던 거 아냐?”

 “…….”

 “내가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는 게 너한테도 좋을 것 같은데. 안 그래? 일방적인 건 부담스럽잖아.”

 “그건…”

 석류맛 쿠키의 말문이 막혔다. 예상치도 못한 대답들이 마구 쏟아져 어안이 벙벙했다.

 “이제 좀 놔주지? 답답해서.”

 감초맛 쿠키의 말끝이 단호했다. 석류맛 쿠키의 팔이 스르르 감초맛 쿠키의 등을 타고 떨어졌다.

 “펜 가져간다.”

감초맛 쿠키가 펜을 챙겨서 홀연히 문을 향했다. 허, 하고 짧게 헛웃음이 터져 나온 석류맛 쿠키가 땅에 박힌 듯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이건 무슨 감정일까. 이런 감정을 감초맛 쿠키 때문에 느끼게 될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감초맛 쿠키의 말이 스치듯 할퀴고 간 자리가 생각보다 따끔했다. 그저 단순히 마음이 상하고 기분이 나쁘다고 치부하고 끝날 감정이 아니었다. 아주 조금은 비참하고 아주 약간은 참담한, 그래서 다소 모욕적인. 자존심에 금이 간 기분이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문을 열고 나서는 감초맛 쿠키를 짤막한 인사와 함께 배웅해줬을 테지만, 석류맛 쿠키는 닫기는 현관문을 향해 단 한 번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주먹을 꽉 쥐자 옷 소매에 굵은 주름이 잡혔다. 









--------------------





요즘 쿠킹덤 켤 때마다 둘이 인사하는 장면 발견하는데 아주... 혼자 기뻐서 날뜀

 

초안은 석류가 확인할 때 안아서 확인을 하는 게 아니라, 침대로 끌어당겨 넘어지든지.. 밀든지 하여튼 1편이랑 같은 구도에서 대사 치는 걸로 계획을 했었는데.. 이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장면이 예쁘게 안 떠올라서.... 저렇게 되었습니다. 1편이랑 같은 구도에서 감초가 하는 말 들으면 훨씬 비참한 기분이 부각되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